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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세례 요한은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온 사람들에게 &lt;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말하지 말라.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만드실 수 있다&gt;고 일갈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도 쓸 데 없는 &lt;족보 논쟁&gt;에 휘말리지 말 것을 충고하며 그것은 다 허망한 짓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신약성서의 첫 책인 마태복음은 처음부터 주님의 족보를 지루할 정도로 길게 나열하며 주님이 곧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어차피 네 권의 복음서가 다 &lt;주님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gt;을 고백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이런 복잡한 족보를 통해 그의 혈통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될 정도입니다. 물론 아브라함과 다윗이 유대인들의 역사와 정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가히 절대적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요 그 질기디 질긴 유대 역사의 긴 실마리를 풀어낸 사람이자 하나님이 유대민족에게 주신 약속의 시원(始原) 같은 존재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집니다. 분열되어 약소민족으로 남아 있던 이스라엘을 하나로 통합하고 굳건한 왕조를 세워 유대민족의 긍지를 한없이 드높인 지도자며 이스라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떠받들어진 인물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밝힌 것은 그가 그저 나사렛 깡촌의 일개 목수 출신의 청년이 아니라 실은 화려한 명성의 후광을 입고 탄생한 비범한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내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span><span> </span><br></p>
<!-- paragraph:p0002 -->
<p class="p1"><span><br></span></p>
<!-- paragraph:p0003 -->
<p class="p2">아닌 게 아니라 마태복음의 주님의 족보는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이해되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lt;하나님의 아들&gt;이신 주님을 인간의 혈통적 우수성과 계보적 정통성을 근거로 증명하려 했던 게 과연 마태복음 족보의 의도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주님의 족보 조차도 가문의 역사를 과장하여 신화적으로 기록한 저 세속의 왕조사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즉 주님의 보잘 것 없는 출신성분이 선교에 걸림돌이 될까봐 원래 그는 이런 족보에서 탄생한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식으로 선전하는 꼴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2">그러나 &lt;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gt;란 결코 할아버지와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물리적 계보가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원래 이삭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육신적인 조건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 그의 &lt;낳고&gt;를 가능케 한 것입니다. 야곱도 그렇습니다. 형 에서의 보복을 피해 오랜 세월 외삼촌의 집에서 보낸 나머지 &lt;이삭이 에서를 낳고&gt;로 기억되며 그의 이름은 영영 묻히고 말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얍복나루에서 밤새 하나님과 씨름한 후 마침내 새로운 탄생을 경험하며 새 이름까지 얻었습니다. 즉 들판에서 방황하며 쓸쓸하게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을지도 모를 야곱의 운명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므로 &lt;이삭이 야곱을 낳고&gt;라는 초유의 반전을 가능케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가 고백하고자 한 참 뜻은 주님의 탄생이야말로 인간의 연약함, 추악한 죄, 탐욕의 탁류가 쓸고간 자리에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을 하나님의 &lt;낳음&gt;의 은총이 역사한 결과 이루어진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이야말로 아브라함과 다윗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우리의 진정한 구주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반역과 타락의 검은 강이 퇴적시켜 온 인간사의 온갖 추악함과 절망의 두꺼운 지층을 뚫고 탄생하사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경륜과 은총을 온몸으로 증거하며 사신 분이셨습니다.</p>
<!--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2">예언의 소리조차 수백 년 동안 끊긴 칠흑 같은 시대의 깊은 나락에서 온갖 사탄의 권세를 정면으로 돌파하시며 &lt;낳고&gt;를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이 위대하신 은총이 부디 성탄절을 앞둔 우리 모두의 삶에 꺾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 되길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