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1w 신명기 강해 9(신 3: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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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1w
신명기 강해 9
신 3:23-29
[23]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29] 그 때에 우리가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거주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을 인도해서 지난 40년간 파란만장한 광야여정을 지내온 모세에게 하나님은 가나안을 내어 주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로서는 억울하고 안타깝고 견디기 어려울만큼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사정을 합니다. 25절 이하입니다.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모세가 26절 상반절에서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라고 했는데, 이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민수기 20장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므리바 사건입니다. 민수기 20장 2-12절입니다. “[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6]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 므리바 사건이 바로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결정적 이유입니다. 방금 읽은 6절을 보면, 하나님이 분명히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는데, 모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쳐서 물을 냅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한 이 사건을 이유로 하나님이 모세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겁니다. 실제로 가나안에 입성 시점에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이니라.” 모세가 요단 저쪽의 아름다운 땅을 보게 해달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더는 내게 이것으로 말하지 말라고 하시며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흔히 우리는 광야생활을 세상살이로 보고, 요단강 건너는 것을 죽음으로, 가나안 입성을 천국가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모세를 두고 그가 천국에 가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죽어서 천국에 갔습니다. 왜냐면 주님이 변화산에서 구약 대표 두 인물과 만나 산상회담을 하시는데, 그때 모세와 엘리야를 만납니다.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 선지자를 대표하는 엘리야를 만난 겁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가나안에 못들어간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가 므리바 사건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이유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합니다. 율법의 화신인 모세조차도 천국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계시적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겁니다. 율법으로는 천국가지 못한다는 사실의 표명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의 인물을 이런 방식으로 해석하다보면, 하나님은 당신 뜻을 계시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무자비하게 희생시키는 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나 갈렙보다 못해서 가나안에 못 들어간 게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위해 모세가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해석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9장을 보면, 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나옵니다. ‘저 사람이 태어난 게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묻습니다. 주님은 ‘부모나 본인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답하십니다. 하나님이 이토록 잔인한 분인가? 라는 겁니다. 욥을 보십시오. 사실 욥도 억울한 사람입니다. 욥이 왜 그토록 생고생을 했습니까? 우리가 욥기를 단순히 보면 순전히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내기 때문에 욥이 희생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자랑하십니다. 얼마든지 시험에 봐라. 얼마든지 괴롭혀 봐라. 그가 나를 경외할 것이다. 거기서부터 욥의 고난은 시작됩니다. 사탄은 그 즉시로 욥을 초토화시킵니다. 멀쩡히 잘 살던 의인 욥을 하나님이 사탄과 내기하면서 결국 희생제물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모세도, 태생 맹인도, 욥도 하나님이 당신의 유익이나 필요 때문에 희생을 강요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욥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욥기 42장 5절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 눈으로 주를 뵙니다.’ 욥이 귀로만 듣던 신앙에서 눈으로 보는 신앙으로 성숙한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남다른 시련과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욥을 위해서 하나님이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과의 내기를 해서가 아니라 욥의 복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멀쩡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생고생시키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우리를 희생시키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피해의식을 절대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근본적으로는 그 사람의 유익과 복을 위해 하나님은 때로 그로 하여금 아픔도 겪게 하시고, 가나안 입국 비자도 안 내주시고, 사탄을 통해 혹독한 시험을 겪게 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그 사건을 통해 메시지도 전달하시지만, 그보다는 그 시련을 겪는 당사자의 유익과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이점에 대하여 오해가 없어야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하려나 노예로 팔립니다. 남의 집에서 종살이하다 무고를 당해 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밑바닥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노예요 죄수에서 하루아침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됩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모든 고난과 최악의 시련은 그것을 통해 드러내시려는 하나님의 메시지 이전에 요셉 자신의 복을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제2인자로 만들기 위해 혹독한 담금질을 한 것입니다. 그러한 담금질 없이는 그 지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셉도 형들을 만나 이점을 고백합니다. 창세기 42장에 보면, 나를 이곳에 보낸 것은 형들이 나를 팔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겉으로는 형들이 나를 팔아서 졸지에 애굽에 끌려갔다고 보이나,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이곳으로 보냈다는 겁니다.
어떤 운명, 아픔, 삶의 우여곡절에 대해서도 우리는 요셉처럼 이렇게 믿고 해석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 우리의 명예와 복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때로 우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과 풀무불 같은 시련을 만나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난해하고, 해석이 되지 않아도 무조건 나의 이익과 유익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필연의 고난 사건이라고 확신하시면 그 이상 복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믿음이 마침내 합력하여 아름다운 선을 이룹니다.
모세의 경우도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비록 생전에는 가나안에 못 갔지만, 그가 죽어 천국에 가서 이 땅에서 얻을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영광을 주님이 보상해 주십니다. 그 사실을 모세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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