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08m 제사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호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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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8m
호 6:1-6
제사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전에는 주로 영국, 독일, 네덜란드 같은 나라가 성서 강국이었습니다. 전 세계에 성서를 많이 반포했습니다. 그런 나라들이 다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은 놀랍게도 우리나라가 성서 강국입니다. 세계 제1위의 성서수출국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개신교 역사가 120년 남짓인데 이것은 기적입니다. 지금 대한성서공회에서는 지구촌 450여 개의 언어로 약 600종의 다양한 성경을 제작해서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쪽은 그들 성서 절반이 우리나라 대한성서공회에서 제작한 것입니다.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성경은 연간 6억 권 이상이 제작되어 반포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불후의 베스트셀러입니다. 유사 이래 성경만큼 많이 만들어지고 많이 팔린 책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가사의한 일은 성경만큼 안 읽히는 책도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요 모순입니다. 성경은 읽고 보는 책이 아니라 기독교 신자들의 액세서리로, 교회 오갈 때 필요한 구색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오죽하면 수십 년 아니 평생 신앙생활하면서도 신구약 성경을 일독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신자가 대한민국 신자 중 95% 이상입니다. 이 통계는 거의 정확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야탑동에 있을 때 차병원에 심방 가서 성경 한 군데를 읽었습니다. 이사야 44장 21절 이하인데 이렇습니다. “ [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그분이 제가 읽은 성경을 듣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묻습니다. “목사님, 이런 말씀이 성경에 있었습니까?” 그분 나이가 50이 넘었고 나이만큼 신앙생활한 분입니다. 실은 제가 그분의 말씀을 듣고 더 놀랐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그 말씀을 건성으로 들었던 겁니다. 그런데 병상에서 들으니 그 감동이 달랐던 겁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친구에게 이끌려 마지못해 주일예배에 참석했는데, 목사님이 그날 예배를 시작하며 ‘나는 지붕 위의 한 마리 참새처럼 외롭습니다’는 시편 102편을 낭독했는데, 그만 거기에 필이 꽂혔습니다. 그 말씀이 그렇게도 당시 자신의 처지와 심경에 맞아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펑펑 울고 나서 그날로 등록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분이 그 교회의 수석 장로가 되었습니다.
믿음은 결코 열심이나 자기 최면이 아닙니다. 말씀에 대한 바른 응답이자 결단입니다. 흔히 부흥회나 기도원에 가보면 확신 없는 사람에게 믿습니다를 100번 하라고 합니다. 방언 못하는 사람도 할렐루야를 100번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멀쩡하던 사람도 정신이 헤롱헤롱해지며 의심이 사라지고, 방언 못하던 사람도 저절로 혀가 꼬이며 방언이 잘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이라 하지 않고 자기 암시, 자기 기만이라고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고 그 지식은 반드시 성경을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본문 3절에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6절에 “하나님 아는 것은 원한다.”고 했습니다. 제사보다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나님 뜻을 분별한 후 예배를 드려야 참된 예배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에 대한 바른 응답이고 순종이지 맹목적인 제사가 아닙니다. 성경은 절대 우리에게 맹신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알라고 합니다. 믿어도 알고 믿으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 알기보다는 의식이나 제사를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 알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주일날 교회 나와서 예배의식 참석하는 것으로 떼웁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무속이나 미신에는 말씀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치성만 있습니다. 치성에 나오는 <천지신명>은 천지간 제신, 모든 신입니다. 어떤 신이든 상관없습니다. 내 소원만 들어주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정한수 떠놓고 갖바위 앞에서 빌고, 기껏 송구영신예배 드려놓고 정동진 가서 일출 보면서 빕니다. 그런 짓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에 관한 바른 지식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분의 기호, 정서가 어떤지를 알 수 있고, 그래야 제대로 된 예배를 바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유물론의 아버지는 포이어바흐입니다. 모든 무신론자들이 다 그를 숭배합니다. 그가 기막힌 얘기를 했습니다. 지금 기독교인이 섬기는 신은 자기 입맛대로 신을 만들어 그걸 하나님이라고 섬기고 있다는 겁니다. 다 가짜라는 겁니다. 이 시대 무신론 최전방에 나서서 공격하고 있는 옥스퍼드대학의 도킨스 박사가 쓴 책이 <만들어진 신>입니다. 포이어바흐의 말과 같은 내용입니다.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 놓은 신을 섬긴다는 겁니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도 그저 내 욕심을 채워주는 도구쯤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 잘 벌고, 건강하고, 취직 잘 되고... 오직 이런 것들만 잘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무엇이고, 영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옳고 바른 것인지에 대한 관심은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툭하면 시험에 들고 회의에 빠집니다. 일이 조금만 안 풀려도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나를 사랑하시는 게 맞나? 내가 계속 믿어도 되나? 회의합니다. 이게 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의 소치라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너무 모릅니다.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심지어는 짐승들까지도 죽이라 하셨는데, 아말렉 왕 아각도 잡아오고, 소떼 양떼도 다 끌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호와께 제사하기 위해 끌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지 자기 판단, 소원을 관철하자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해야지, 자기 고집, 자기 판단대로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다 불순종의 죄악이지 제사가 아닙니다. 열심도 헌신도 희생도 그게 다 하나님 뜻에 대한 순종일 때만 바른 믿음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거짓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성적입니다. 지식, 지성, 지혜의 원천이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형상(Imago Dei)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바로 그런 형상을 닮았다는 뜻이고, 그래서 우리가 인격적인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다 지성적인 존재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은 반지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앙은 품위가 있고 격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을 너무 천하게 만들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아는 만큼만 믿습니다. 기독교 신앙도 모르고 믿으면 미신입니다. 아무리 믿습니다 해보십시오. 믿어지지 않습니다. 입으로만 믿지 마음 저변에서는 안 믿어집니다. 왜냐면 믿음이란 근본적으로 믿음의 대상에 대한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신뢰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상대에 대해 신뢰할 수 있으려면 그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신뢰는 반드시 그 대상을 알 때 발생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기에, 주님을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못 믿습니다. 호세아 4장 6절을 보면 더욱 충격적입니다. “내 백성이 하나님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 맞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으면 망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지식 없이 나름대로 믿는 것은 다 미신이고 맹신입니다. 그게 과하면 광신이 됩니다. 그러니 망하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부디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가십시다. 주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더 많이 쌓아가십시다. 기독교 신앙은 근본적으로 지혜와 지식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기에 지성적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 아는 지식으로 크게 흥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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