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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난장판이 된 성전을 목격하신 주님이 장사하는 무리들의 집기를 둘러 엎으시고 비둘기와 양들을 몰아내시며 &lt;너희가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gt;고 의분을 터뜨리셨습니다. 이를 본 젊은이들은 만세를 부르며 지지를 보낸 반면 소위 성전 주인을 자처하던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분노하며 이를 갈았습니다(마 21:15). 그들에게는 주님의 행위가 옳으냐 그르냐보다도 그에게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느냐? 누가 그에게 성전을 정화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느냐가 더 문제였습니다. 그랬기에 &lt;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권한을 주었느냐?&gt;(마 21:23)며 다그쳤던 겁니다. 사실 그렇게 보면 당시 주님의 행위는 분명 난동이었습니다. 난동이란 기존의 질서가 공인하지 않은 사람이 폭력적으로 어떤 일을 도발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전 관리인들이 따로 있음에도 아무런 자격도 권한도 없는 일개 시골 청년이 그같은 폭력을 휘두르며 난동을 부린 것이 과연 옳았느냐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은 주님 역시도 그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권위를 내세우기는커녕 도리어 권위에 도전해 싸우신 분이셨습니다. 지금도 역시 권위를 따지는 그들에게 어떤 압도적인 권위를 제시하기보다 오히려 반문으로 응수하십니다. &lt;나도 한 가지 묻겠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왔느냐 사람에게서 왔느냐?&gt; 주님의 이 날카로운 질문이 결국은 그들을 유구무언으로 만듭니다. 만약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그런데 왜 그를 믿지 않느냐?는 비판을 면치 못할 테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그를 예언자로 믿는 많은 군중들의 분노를 살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lt;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행하는지 말하지 않겠다&gt;며 그 언쟁을 끝내십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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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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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권위란 현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이제 권위는 사회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종교에서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여간 모든 권위를 타파하자는 게 현대인들의 지상과제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지배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각성된 의식입니다. 젊은이들은 권위주의의 상징인 부모와 선생, 정치인, 종교인들을 싸잡아 구세대라며 혐오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숙정하셨던 주님도 분명 권위주의를 거부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와도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은 &lt;사람에게서 난 권위&gt;와 &lt;하나님에게서 난 권위&gt;를 구별하셨고, 세례 요한과 자신의 권위야말로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만약 당시 주님과 세례 요한의 권위를 기존의 질서로 입증할 수 있었다면 그들도 이미 낡은 질서에 속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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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 paragraph:p0005 -->
<div>이제 우리는 여기서 중대한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누가 과연 그것을 고발하고 대결하며 개혁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누가 과연 개혁의 주체가 되어 옳으냐 하는 것입니다. 요즘 교계 여기저기서 개혁이 봇물입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다 물타기입니다. 다 개혁의 대상들이 개혁 운운하며 사태를 호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lt;한기총&gt;을 온통 &lt;장사하는 집&gt;으로 만든 길자연 목사가 얼마 전 역시 &lt;문제의 소굴&gt;이 되어버린 분당중앙교회에 와서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목사를 초청해다 설교를 시킨 교회나 근신하지 않고 부른다고 넙죽와서 자기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식으로 변명한 목사나 정말 막상막하입니다. 공자는 &lt;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일에 간섭하지 말라&gt;(不在其位, 不謀其政)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이 세상 속에는 그 어떤 지위도 없었기에 항거할 수 있었고, 또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현실에 저항하여 일어났기에 그 사회 전체의 방향을 물을 수 있었습니다. 개혁의 주체는 우선 기존 질서에 아무런 자리도 갖지 않은 세력이어야 합니다. 기존 질서가 인정하는 권위로는 안 됩니다. 따라서 &lt;무슨 권위로?&gt;라며 대드는 기득권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권외에 있는 청년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아무런 권위도 가지지 않은 청년들이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든 오늘의 현실을 숙정해야 합니다. 주님이 그랬듯이!</di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