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30w: 고린도후서 강해 8(고후 5:8-16)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2008년 4월 30일 수요성경공부 고린도후서 강해 8
본문: 고후 5:8-16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니라 [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사람이 죽으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육체는 흙으로 영혼은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든 사람이 이렇게만 가르치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현대 신학자들 가운데는 이렇게 주장하기도 합니다. 죽음이란 것은 전인적인 죽음이어서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도 죽는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육체만의 부활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이 함께 죽음 가운데서 되살아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도 십자가에서 육체만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죽었다고 합니다. 만일 이것이 아니라면 누가 우리 영혼의 죄값을 치르느냐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온몸을 떨었는데, 단지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의 죽음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육체와 영혼이 죽으심으로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대속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은 영혼과 육신이 함께 부활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또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죽음은 육체와 영혼이 무덤에서 잠자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런 주장을 합니다. 성경에 ‘잠잔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 것을 근거로 죽음은 소멸이라기 보다는 잠자는 것으로 얘기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천국과 지옥은 필요 없습니다. 무덤 속에서 잠자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일어나면 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죽음에 대한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주장하기는 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천국과 지옥뿐만 아니라 연옥에도 간다는 겁니다. 연옥은 천국가기에는 공덕이 부족하고, 지옥가기에는 억울한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거기서 대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산 사람들이 그를 위해 공덕을 축적하면 그 영혼이 천국으로 간다고 믿습니다. 중세 루터의 종교개혁이 연옥설에서 시작합니다. 면죄부가 바로 연옥설을 밑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당시 교회는 면죄부로 천국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이 다양한 이론들 중 어디에 속합니까? 8절입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니라.” 몸은 육체를 가리킵니다. 내 영혼이 육체를 떠나 천국가서 주님과 함께 거하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지지하는 쪽에 서 있습니다. 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뿐만 아니라 10절에도 보면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천국에 가는데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겁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심판’은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심판이라기보다는 믿는 자의 심판입니다. 성도의 심판은 천국이냐 지옥이냐 라기보다는 각각 행한대로 받는 상급의 심판입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3장 14절 이하의 심판입니다. 이것은 다 성도가 받는 상급의 심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9절에서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 합니다. 육체를 입고 살든지 육체를 떠나 천국에 가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자는 겁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보면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라고 합니다. 상급의 심판을 받게 될 우리는 이 땅에 있는 동안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왜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고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억울하다고 생각된다면, 주님의 대속의 죽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15절입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이 우리의 영생을 보장하셨기에 잠시 세상에 사는 동안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옳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지상목표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오로지 우리의 기쁨, 보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당한다고 합니다. 가톨릭은 일단 부족하게 살아도 연옥이란 곳이 있어서 희망이 조금이나마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옥을 믿지 않습니다. 죽는 순간에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죽음 이후에는 더 이상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