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4m 겨울 전에 오라(딤후 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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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4m
딤후 4:9-22
겨울 전에 오라!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 [21]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주님도 그랬지만 사도 바울도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 같았으나 가까이 가보면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로마에서 옥살이하던 말년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역자들이 그를 다 떠난 겁니다. 디모데후서 1장 15절을 보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고 합니다. 바울이 말하던 아시아는 소아시아입니다. 에게해 서남부, 지금의 터기 지방입니다. 바울이 거기를 세 차례나 순회하며 전도한 곳입니다. 바울은 거기에 교회를 많이 세웠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7개 교회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히고 수감생활이 길어지면서 그 소아시아 교회들이 다 바울을 떠난 겁니다. 그러니 당시 옥살이하던 바울의 비애감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으면 지금 소아시아에서 목회하던 디모데를 속히 오라고 부릅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겨울 전에 오라’고 합니다. 왜 겨울 전에, 왜 하루라도 빨리 오라고 했을까요?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쓴 게 주후 67년 늦가을입니다. 절기상 요즘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6절을 보십시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그는 이미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를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겁니다. 당시 에베소교회 사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교회를 비울 입장이 못 되었음에도 빨리 오라고 합니다. 전제는 피를 제단에 부어 바치는 제사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처형당했습니까? 디모데후서를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로 황제에게 끌려 나가 참수를 당합니다. 그야말로 자기의 뜨거운 피를 순교의 제단에 부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형 당하기 전에 너의 얼굴을 보고 싶으니 겨울 전에 빨리 오라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는 흔히 바울을 성공한 인생으로 봅니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실패한 사람입니다. 실패 정도가 아니라 참패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왜 유명합니까? 한마디로 바울은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신약성경 2/3가 바울 작품입니다. 바울이 왜 그토록 많은 편지를 썼을까요? 바울의 글들은 문학작품이나 신학논문이 아닙니다. 다 편지입니다. 어떤 편지냐면 자기가 세운 교회의 온갖 문제를 수습하고 해결하기 위해 그때그때 쓴 편지입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글이 많아진 겁니다. 그게 잘 보존되어 성경이 된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그토록 열심히 전도하고 죽을 힘을 다해 숱한 교회를 세웠는데 제대로 된 교회가 한 곳이라도 있었습니까? 다 문제투성이, 상처 투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쉴 새 없이 편지를 쓴 겁니다. 지금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니 거기에서 편지를 쓴 겁니다. 눈이 어두워 잘 안 보이니까 대필까지 시켜가며 편지를 썼습니다. 번듯한 교회가 없습니다. 자기가 교회를 세웠는데 그 교회가 다 바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그가 유언과도 같이 쓴 편지가 디모데후서입니다. 그래서 그가 더 외로워 보입니다. 그의 최후가 얼마나 딱하고 쓸쓸했는지 실감 납니다. 본문 10절을 다시 보십시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특히 데마는 누구입니까? 빌레몬서 24절을 보면 바울의 인사말 가운데, ‘나의 동역자 데마와 누가가 문안한다’고 합니다. 즉 데마는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골로새서 4장 14절에도 ‘사랑을 받는 누가와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합니다. 데마는 늘 누가와 나란히 등장합니다. 바울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실제 초대교회의 한 문서에는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사도 바울의 오른 편에는 누가가, 왼편에는 데마라는 친구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좌데마 우누가입니다. 그렇게 신실했던 동역자 데마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사랑해 바울을 버리고 떠난 겁니다. 바울이 가장 외롭고 두려웠을 때 데마가 떠났습니다. 얼마나 슬픈 얘깁니까? 이 허무한 사건이 감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던 바울에게 얼마나 모진 아픔이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데마가 바울이 가장 힘들고 외롭고 절박할 때 그를 버리고 떠난 이유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반드시 주님을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주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미련입니다. 세상에 대한 애착이 그렇게 만듭니다. 롯의 아내를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의 성 소알을 향해 뛰면서도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에 뒤돌아보다 결국 소금기둥이 됩니다. 사실 요즘 우리도 그렇습니다. 어디 가서 예수 믿는다고 하면 안 됩니다. 시침 떼고 가만있어야 합니다. 괜히 밝혔다가는 그 시간부로 교회 망신, 주님 망신입니다. 누구보다 세상 사랑하는 줄 잘 아는데 어떻게 예수 믿는다고 밝힐 수 있습니까? 올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세상을 택했습니까?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은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는 것을 배교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바울을 버린 것이지 신앙까지 버린 것은 아닙니다. 데살로니가는 당시 유명한 그리스도인의 도시였습니다. 거기는 지정학적 이유로 박해 무풍지대였습니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너도나도 데살로니가로 모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로 형성된 신도시가 된 겁니다. 따라서 데마의 데살로니가행도 배교보다는 희생적 신앙에서 안일하고 이기적 신앙으로 후퇴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더 사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고난의 한복판이었던 로마에서 더는 박해가 없는 데살로니가로 도피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온갖 희생을 무릎 쓰고 돕는 자리에서 이제는 방관자의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희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도 대형교회는 작은 교회에서 수평 이동해 간 신자들입니다. 왜 작은 교회를 버리고 큰 교회로 갔을까요? 작은 교회는 고생스럽고 구차하니까, 희생해야 하니까 그렇습니다. 큰 교회는 시설도 좋고, 환경도 쾌적하고,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나가든 들어가든 다른 사람 의식할 필요도 없습니다. 유명한 교회요 큰 교회 교인이라는 체면도 채워줍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를 버리고 큰 교회로 몰려가는 겁니다. 그 대열에 데마가 합류한 것입니다.
이제 바울 곁에는 달랑 누가만 있습니다(11절). 누가는 누구입니까?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사람입니다. 그는 의사였습니다. 요즘은 성 누가 병원이 잘 안 보였는데, 전에는 성 누가 병원이란 간판이 많았습니다. 누가가 의사여서 그렇습니다. 누가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던 전문직 엘리트였습니다. 실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보면 문장 자체가 고급스럽습니다. 그만큼 유명한 지식인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환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의사였기에 환자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데마처럼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에게는 지병이 있었습니다. 자기 몸을 찌르는 가시라고 했고, 악마의 사자라고도 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그만큼 병 때문에 고통을 당했던 바울은 주치의가 필요했는데, 누가가 평생 감당한 겁니다. 다 떠나고 마지막에는 왼팔 노릇하던 데마마저 데살로니가로 가버렸지만, 누가는 끝까지 남아 노사도의 최후를 지킵니다.
여러분, 예수 믿기가 힘들고, 생활이 어려워도 주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교회를 등지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는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행복한 길이 아닙니다. 누가처럼 주님의 곁을 지키십시오. 그것이 복된 인생입니다. 믿음의 길은 언제나 외롭습니다. 믿음의 길 앞에는 언제나 데마의 길과 누가의 길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길, 세상을 사랑하는 길,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길 위에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혹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던 데마의 길을 걷고 있지 않습니까? 누가가 홀로 고난당하는 로마로 주님 곁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습기 찬 지하 감방에서 지금도 속히 내게 오라, 겨울 전에 오라,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오라는 바울의 말씀을 들으시고, 모두가 겨울 전에 고난의 자리, 누가의 자리인 주님 곁으로 돌아가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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