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베스트>가 아니라 <유니크>

지난 10월 고은 시인의 집 앞에 기자들이 몰렸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기대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금년에도 우리에게는 그런 꿈같은 일이 없었습니다. 매년 이 맘 때면 세계의 이목이 노벨상 수상자들에게로 집중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하나의 관심은 바로 유대인 수상자가 몇 명이나 될까 하는 것입니다. 새삼 놀랄 일은 아니지만 올해도 역시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휩쓸었습니다. 미국의 유대인 매체인 <주이시 저널>은 올 노벨상 수상자 중 평화상을 받은 <화학무기금지기구>를 제외한 12명 가운데 절반인 6명이 유대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현재 유대인은 세계 70억 인구의 0.2%인 1천 7백만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22%, 즉 5명 가운데 1명은 유대인이었습니다. 특히 경제학 분야에서는 수상자의 42%가 유대인이었고, 그 밖에도 의학 28%, 물리학 26%, 화학 20%, 문학 12% 등 전 분야에서 골고루 수상자를 냈습니다. 도대체 유대인들의 그 창의성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현 박근혜 정부의 경제 기조는 <창조경제>입니다. <창조경제>란 무엇일까요? 기존의 경제 패러다임에서는 기업가의 리더십과 추진력이 우선시 됐다면 여기서는 더 이상 추진력이 아니라 창의력이 주도하는 경제 패러다임을 말합니다. 상상력과 꿈이 경제의 동력이 되어 수백 수천만을 먹여 살리는 경제를 뜻합니다. <제3의 물결>의 저자 앨빈 토플러와 함께 현대 미래학을 창시한 짐 데이토는 이미 오래 전에 <세계 경제는 제조업에서 서비스 산업으로, 다시 지식 경제에서 창조 경제로 이동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보화 사회 다음에는 반드시 ‘꿈의 사회’(Dream Society)가 해일처럼 밀려 올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그가 말한 <꿈의 사회>란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를 말합니다. 모든 경제구조의 문화 산업화를 뜻합니다. 경제의 주력 엔진이 정보에서 이미지와 스토리로 넘어가고 상상력과 창조성이 국가의 핵심 경쟁력이 되는 시대를 말합니다. 이게 바로 정보화 다음에 올 제4의 물결, <꿈의 사회>입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런 꿈의 사회에 최적화된 민족으로 단연 유대인들을 꼽습니다. 그들의 생활화된 독서문화와 질문과 토론, 융합과 통섭의 교육방식, 감사생활과 불굴의 의지 같은 긍정적인 마인드가 꿈의 사회에 주역이 될 수 있는 최상의 조건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그들은 세계 서비스 산업을 주도하며 도처에서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계 500대 부자의 상위 20%를 독점하고 있는 유대인들, 그래서 더욱 슈퍼 엘리트 집단으로서의 유대인들의 저력에 어떤 불가사의한 경외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결코 자기 자식이 최고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누구에게나 그만의 고유한 달란트를 주셨다고 믿기 때문에 자기 자녀가 하나님이 주신 그 재능에 깊이 감사하며 자신의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해 보다 독창적이고도 개성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즉 <베스트>가 아니라 <유니크>를 기대하는 게 유대인 부모들의 한결같은 소망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베스트>는 단 한 명이지만 <유니크>는 모든 사람이 가능합니다. 그러면서도 각자가 고유한 자기만의 세계를 펼칠 수 있습니다. 에디슨은 최악의 학습장애아였고, 아인슈타인은 구제불능의 지진아였으며, 스필버그는 언제나 외톨이 왕따였지만 자기 아이들의 특별한 달란트를 존중하고 고무해준 부모 덕분에 그들은 모두가 인류 역사를 바꾼 특별한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결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실패도 값진 자산이라 믿으며 도리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매사에 감사하는 그 <긍정의 힘>이 <유니크>한 상상력을 만들고 거기에 다시 감성을 융합하여 가장 독창적이고도 개성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감사절 아침, 비록 <베스트>는 아닐지라도 나 역시 주님의 달란트를 받은 하나님의 특별한 자녀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주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