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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0m 내 영혼아,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기자!(눅 12:16-21)

20131110m

눅 12:16-21

내 영혼아,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기자!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주님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정경 말고 외경에는 이와 비슷한 얘기가 나옵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외경이 있습니다. 외경은 정통성과 권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계시로 공인 받지는 못하고 정경에 들지 못한 문서들을 외경 혹은 위경이라고 합니다. 정경은 66권인데, 외경은 많습니다. 구약의 외경 가운데 유명한 에녹서가 있습니다. 이 문건이 세 건이기에 에녹1,2,3서라고 부릅니다. 에녹1서 97장 8절 이하를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내가 큰 부자가 되었고, 원하는 것을 다 가졌으니 이제 내가 계획한 것을 모두 시행하리라. 이는 내가 은을 얻었고, 곳간에 물건을 가득 채웠으며 내 집에 일꾼이 물처럼 많으리라 하고 자에게 저주가 있을지라. 그 인생이 물처럼 흘러갈 것이며 그의 재물이 그의 곁에 머물지 않을 것이며 그는 곧 자취도 없이 사라지리라.’ 신약의 유명한 외경 가운데 도마복음이 있습니다. 거기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나옵니다. 도마복음 63장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토지를 가진 한 부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저 많은 밭에 씨를 뿌리고 잘 가꾸고 추수하여 내 곳간마다 곡식을 가득 채워 부족함이 없게 하리라 그러나 그날 밤 그는 죽고 말았다.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 에녹1서도 도마복음도 다 누가복음의 내용보다 훨씬 더 간결합니다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비슷합니다. 무슨 얘기냐면, 네 복음서 가운데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에만 나오지만, 외경에서 보듯이 구약과 신약 시대를 지배하던 성경의 보편적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겠습니다. 한 부자가 있습니다. 그해 농사가 풍작을 이뤄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수확한 곡식이 너무 많아 쌓아 둘 데가 없었다는 겁니다. 결국 기존의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거기에 추수한 곡식을 다 쌓았습니다. 부자는 흐뭇해서 독백을 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곡식을 쌓아두었으니 이제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런데 부자가 이렇게 달콤한 환상에 젖어 있을 때,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집니다. 느닷없이 하나님이 그 부자의 죽음을 선고합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가 준비한 이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얼마나 황당하고 허무한 노릇입니까? 이제 즐기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죽음을 선고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님이 부자를 무엇이라 하셨는가 입니다. 하나님은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 규정에 공감이 가십니까? 왜 이 부자가 어리석습니까? 오히려 능력 있고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엇 때문에 밤낮 가리지 않고 물불 가리지 않고 몸을 던집니까? 다 부자처럼 되기 위해서입니다. 큰 곳간에 물건을 잔뜩 쌓아두려고 날마다 뛰는 것 아닙니까? 부자야말로 우리의 선망의 대상이고, 우리의 롤 모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부자를 어리석다고 하십니다. 왜 부자가 어리석습니까?


그는 오직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만을 자기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곳간을 크게 짓고 거기에 온갖 물건을 쌓아두고 날마다 편안히 쉬며 즐기는 것입니다. 18절 이하를 보십시오.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이것이 그의 삶의 목표이자 재물을 축적하는 궁극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어찌 이 부자만의 인생관이겠습니까? 요즘도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바로 그것입니다. 평안히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 소망과 인생관을 위해서는 최대한 곳간을 크게 짓고 곡식과 물건을 잔뜩 쌓아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부가 내 행복을 보장한다는 겁니다. 


정말로 부가 내 행복을 보장합니까? 돈은 언제나 사람을 터무니없는 기만에 빠지게 합니다. 지금도 사람은 돈만 많으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돈 모으는 일에 혈안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인생관이야말로 치명적이라고 하십니다. 부자가 곳간 가득 쌓인 곡식을 바라보며 흐뭇해서 내 영혼아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평안히 즐기자라고 할 때 주님은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는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절대 인간의 행복이 곳간의 부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입니다. 자기가 쌓아 놓은 재물을 하나도 써보지 못하고 그날 밤에 죽습니다. 인생의 행복과 평안은 절대 부에 있지 않고 내가 쌓아 놓은 돈에서 오지 않고 하나님 손에 달렸습니다. 이 진지하고도 엄숙한 사실을 깨달아야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않습니다. 더 늦기 전에 돈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의 평안이 달려있음을 깨달으십시오. 그러나 이 부자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부요하지 못했기에 어리석은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부요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이 부자는 오직 자기 밖에 모른 지독한 이기주의자였기에 어리석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등장인물이 오직 부자 한 사람뿐입니다. 모노드라마입니다. 부자의 안중에는 하나님도, 이웃도, 심지어 아내도 자식도 없는 듯 끝까지 나 뿐입니다. 내 곡식, 내 곳간, 내 물건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원문에서 보면, <나>라는 말이 무려 14번이나 나옵니다. 대화는 없고 끝까지 나만의 독백입니다. 그는 오직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한 철저한 이기주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틀렸다는 겁니다. 부자가 남의 것을 부당하게 갈취하거나 착취해서 부를 축적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악착같이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즐기겠다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냐며 항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비록 정당한 부라 해도 그것을 나 혼자만 즐길 수 없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 소유가 실은 하나도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 순수한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성경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가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합니다. 네 영혼을 찾는다는 것은 가장 고유한 내 것이라 생각하는 것조차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무리 젊고 유능한 사람도 하나님이 그 영혼을 도로 찾으시면 오늘 밤이라도 당장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내 생명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숙명적으로 누구도 하나님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 빈손입니다. 내 생명, 자식, 아내, 남편, 재산도 다 두고 떠나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 것이라 착각하고 살 뿐입니다. 하지만 내 수고의 대가이고 내 능력의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이런 삶의 행태가 어리석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인의 부름을 받아 주인의 부와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내 뜻대로 집행하면 안 됩니다. 착하고 신실한 청지기가 될 지언정 본문의 부자 같은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맙시다. 이기주의에 빠지지 맙시다. 


마지막으로 부자가 어리석었던 이유는 영혼의 진정한 필요를 몰랐습니다. 사람의 영혼이 곳간에 쌓아 놓은 물건으로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된 나라일수록 자살지수나 정신병자 지수가 높습니다. 우리나라도 먹고 살기 힘들 때만 해도 자실지수가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8-9년째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1위입니다. 하루에 45명씩 자살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해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부자라고 그의 영혼까지 부요한 것은 아닙니다. 훨씬 더 눈멀고 곤고하고 가련하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왜냐면 마태복음 4장 4절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떡으로만 안 됩니다. 말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혼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부자처럼 곳간에 쌓아 둔 소유로 영혼의 필요를 대신하지 않습니까? 지금도 수많은 영혼이 말씀이 빈곤해서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재물보다는 하나님의 은헤를 구하고 주의 말씀을 구하십시오. 그것이 내 영혼이 평안할 수 있는 참된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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