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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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은 개인적 차원의 기도라기보다 <우리>라는 주어가 말하듯 주님이 교회에 제시하신 집단적 기도의 모범이고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정의가 이 땅에서도 이뤄지기를 바라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무엇보다도 <일용할 양식>을 중요한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도 우리의 삶의 기본 요건인 물질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해 동의하셨음을 뜻합니다. <일용할 양식>이 없음은 인간을 비굴하고 비참하게 만들 뿐 아니라 자칫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마저도 저버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양식을 굳이 일용할 것으로 제한하신 것은 하루치라는 수량적 의미보다는 과도한 욕심에 빠지지 말라는 절제의 뜻일 테지만 실제에 있어서도 공중의 새들을 보십시오.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하나님께서 먹이시나니> 언제나 일용할 양식만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인 오늘 우리들이겠습니까? 주기도문에 대한 이런 이해를 너무 물질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기 나오는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석합니다. 옳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주장도 일리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물질적인 빈곤에 시달리며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결코 외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 아직도 일용할 양식을 걱정해야 하는 이웃들이 존재한다면 이 <주기도>야 말로 이 시대 모든 신앙인들에게 나눔과 베품을 촉구하는 결단의 기도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해 저문 광야에서 허기진 오천 명을 먹이신 주님의 오병이어의 기적도 그 사건에 앞서 자기의 것을 아낌없이 내놓은 한 소년의 결단이 있었음을 잊지 말 일입니다. 당장 일용할 양식이 없는 이웃을 두고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은 먹을 수 있지 않느냐는 말로 때우지 마십시오. 배고픈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맛보게 되는 그 첫 걸음은 당연히 신앙공동체가 나눠주는 사랑의 빵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또 그런 진심어린 자선과 기부가 한 사회의 극심한 불균형과 물질적 고통으로부터 사회적 약자들을 구할 수 있는 참된 저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런 일을 감당해 나갈 신앙공동체를 원하셨습니다. 또 그런 사역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그 지경을 더욱 확장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선생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묻는 부자 청년에게 <가서 네게 있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얼마나 경악했을까요? 아닌 게 아니라 그 부자 청년도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도 다 그 부자 청년처럼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주님 말씀처럼 살겠다고 자신 있게 결단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의 타당성조차도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이 전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전쟁도 가난도 불평등도 병마에 고통하는 신음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평화의 나라의 표상입니다. 물론 그 길이 쉽지 않음을 이미 주님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부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하시며 기도하실 뿐 아니라 나눔과 베품을 위해서도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십시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분명 우리의 가진 것만이 아니라 내 삶 전체를 바쳐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일에 봉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제 내린 차가운 가을비와 함께 이웃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눈길도 더욱 깊어지고 보다 따뜻해지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