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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31103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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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시 34:1-9</p>
<!-- paragraph:p0003 -->
<p class="p1">참 좋으신 하나님</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1]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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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본문은 다윗의 고백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절도 보시면, 여호와를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3절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겠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여호와를 송축하고 찬양하고 자랑하며 그의 이름을 높이겠다고 합니까? 여호와야말로 좋으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렇습니다. 8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선하심이란 말씀이 나오는데, 그 뜻은 ‘좋으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복음성가에 &lt;좋으신 하나님&gt;이란 곡이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우리 하나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이어지는 8절을 보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좋으심을 몇 가지만 맛보겠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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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9 -->
<p class="p1">우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기에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어떤 친구가 가장 좋은 친구입니까? 밤낮 같이 있는 친구입니다. 가장 좋은 친구와는 밤낮 붙어살지 않습니까? 야곱을 보십시오. 형에게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를 속여 복을 훔치고 결국 망명길에 오릅니다. 첫날밤 들판에서 노숙합니다. 자기는 천애 고아라고 생각하는데, 그날 밤 놀라운 사건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있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여 이 땅에 다시 돌아오게 하고, 정녕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야곱은 자기가 고아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곁에 있을 때나, 사고치고 도주할 때나, 30년간 객지생활할 때나 함께 계셨습니다. 한 번도 임마누엘을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모세가 처음 소명을 받을 때, 그는 펄쩍 뛰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설득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한다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죽고 후계자 여호수아에게도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고백하기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했고,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하늘 끝에 가도, 음부에 자리를 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최후로 남기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지독한 임마누엘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과 나란히 해변을 걸었습니다. 두 사람의 뒤에는 주님과 그 사람의 발자국이 찍혔습니다. 한참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발자국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가 주님께 항의합니다. 왜 저 때는 저 혼자만 두셨습니까? 왜 저와 함께 하시지 않았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들아 나는 한 번도 네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저 때는 네가 세상 일에 실패해 상심했던 때가 아니냐, 저 때는 네가 몸이 아파 죽을 번 하지 않았느냐? 친구의 배신으로 괴로워하던 때가 아니냐, 그럴 때마다 내가 너를 내 품에 안았다, 등에 업었다. 저 발자국은 나의 발자국이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때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배반하고 죄악 중에 있을 때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주님께 반항할 때도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입니다. 내가 주님을 떠나니 주님이 나를 떠난 줄 압니다. 그것은 내 느낌일 뿐입니다.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참 좋은 주님입니다. 아무리 고집을 부리며 달아난다 해도 주님은 절대 우리를 놓치지 않고 기어이 나를 추적해서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참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p>
<!-- paragraph:p0010 -->
<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에벤에셀의 하나님이어서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에벤에셀은 이런 뜻입니다. 사무엘상 7장 12절입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기까지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입니다. 에벤에셀은 사무엘이 세운 감사의 기념비입니다. 추수감사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올해도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 여러분은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온 것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올해도 에벤에셀의 감사비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만 하신 게 아니라 여기까지 도우시는 분입니다. 구원하신 당신의 백성을 끊임없이 관리하십니다. 그래서 참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 낳고 계속해서 양육하듯이 그렇게 돌보십니다. 이사야 41장 10절 이하입니다.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고 보호해주신 하나님이 참 좋으신 하나님, 에벤에셀의 하나님입니다. 물론 지금도 절망 가운데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과 아픔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석해야 합니다. 나를 정금으로 만들기 위한 연단입니다. 나를 더욱 투명한 영혼으로 만들기 위해 정화하고 계신 것입니다. 철을 끊임없이 담금질해야 비로소 쓸 만한 연장으로 태어납니다. 무슨 은혜가 그리도 고통스럽냐구요? 무슨 사랑이 그렇게 아프냐구요? 지금까지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때려서라도 우리의 길을 되돌려 놓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게 처절한 고통과 아픔이라해도 다 가이 없는 주의 사랑입니다. 어떤 처지에 계시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오래지 않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여호와이십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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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마지막으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기에 좋은 하나님입니다. 창세기 22장 14절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 이레는 아브라함의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산을 오르는데, 아들 이삭이 ‘아버지, 나무와 불은 준비되었는데 하나님께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하자 아브라함은 ‘아들아, 번제에 쓸 어린 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다.’ 이게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무조건 본토 아비 친척을 떠나라고 했을 때 떠난 것, 100세에 얻은 아들 잡아 바치라는 말에 실제로 칼을 뽑아 든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잡으려고 칼을 빼 든 것을 보고 우리는 광신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여호와가 다 책임진다, 다 알아서 한다,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는 여호와 이레의 신앙이 있었기에 아브라함은 쇼한 게 아닙니다. 로마서 8장 32절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세상에서 이 말씀보다 더 무서운 말씀은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아들까지 주신 마당에 뭘 더 아끼시겠냐는 겁니다. 다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예비해 놓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이레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아들을 아끼지 않은 분이 뭐가 아깝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갖 좋은 것을 다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우리 쪽에서 받을 채비가 되면 냉큼 주십니다. 우리의 문제는 받을 태세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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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그럼에도 우리 마음에는 감사가 없고, 찬송이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임마누엘이요 에벤에셀이요 여호와 이레인데, 왜 우리는 늘 고통스럽다고 생각합니까? 결국 우리에게는 믿음이 없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좋으신 하나님을 체험합시다. 맛보아 알라는 것은 좋으신 하나님을 좋으신 하나님으로 체험하라는 주문입니다. 우리는 말로는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체험을 한 적은 없습니다. 올 가을에는 더욱 좋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을 바칩시다.</p>
<!-- paragraph:p0016 -->
<p class="p1"><br></p>
<!-- paragraph:p0017 -->
<p class="p1"><br></p>
<!-- paragraph:p0018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0NkJybfJSgU"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