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03m 주님의 능력을 훔치다(막 5: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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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3m
막 5:25-34
주님의 능력을 훔치다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본문은 무려 열두 해나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주님 몰래 뒤로 가서 옷가에 손을 댔는데, 그 순간 불치의 만성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기사입니다. 이 여인이 왜 그렇게 무리 틈에 끼어 주님 몰래 접근해서 옷가에 손을 댔을까요? 구약 레위기 15장을 보면, 혈루증은 나병과 같이 취급했습니다. 그만큼 부정한 병이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정상인과 함께 생활하지 못하고 격리된 장소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혈루증 환자는 성전이나 회당 출입을 금지했습니다. 또한 이 병은 정당한 이혼사유가 되었습니다. 아마 본문의 이 여인은 이혼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주님을 뵙지 못하고, 몰래 주님 뒤로 접근해서 주님 옷에 손을 댄 것입니다.
이 여인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안 해 본 게 없습니다. 유명한 의사를 찾아다니며, 좋다는 처방은 다 받았습니다만, 결국 재산만 탕진하고 효험은 고사하고 도리어 병만 더 중해졌다고 합니다. 혈루증은 유출병입니다. 끝없이 하혈하는 불임병입니다. 성서적으로 말하면, 피는 생명입니다. 날마다 이 여인이 하혈했다는 것은 날마다 조금씩 죽어갔다는 의미입니다. 혈루병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병입니다. 실제도 상징으로도 그렇습니다. 어느 날 이 여인이 주님의 소문을 듣습니다. 자기가 사는 성에 주님이 오신다는 겁니다. 이번에 오시는 주님이 절대 자신을 실망시킬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이 들어 필사적으로 주님을 뵈려고 합니다. 주님만 만나면 자기 병이 고쳐질 것 같은 믿음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드러내 놓고 주님을 뵙지 못하는 부정한 환자입니다. 자기가 혈루증 환자라는 사실을 알면 사람들은 자기를 피하면서 돌을 던질 게 뻔합니다. 빨리 성 밖으로 나가라고 했을 겁니다. 그래서 무리들 몰래 주님 뒤로 접근해서 주님의 능력을 훔친 겁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주님께 접근해 주님을 만지기라도 하면 자기 병이 낳을 것 같다는 믿음과 확신 말입니다. 이것이 결정적입니다. 당시 주님 주변에 사람이 많았습니다. 주님 옷에 손을 댄 사람도 한두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주님이 ‘누가 내 몸에 손을 댔느냐?’고 하시자, 제자들이 어처구니없어 하며 ‘지금 많은 사람이 밀고 당기는 것을 보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혈루증 여인에게만 주님의 능력이 빠져나갔습니다. 오직 그 여인에게만 그런 확신이 있었다는 얘깁니다. 다른 사람은 다들 호기심으로 주님을 만지거나 주님께 매달렸지만, 이 여인은 달랐습니다. 주님의 능력은 아무에게나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주님 몸에 손만 대면 화학반응처럼 주님 능력이 발생하는 게 아닙니다. 믿음을 가진 자가 손을 댈 때만 주님 능력이 발동합니다. 34절도 보십시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점을 주님이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냥 주님과의 스킨십으로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믿음을 갖고 내 옷가에 손을 댔기에 나의 능력이 너에게로 흘러들어갔다는 겁니다. 이것을 주님은 사람들 앞에서 확실히 짚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경꾼은 주님 곁에 백날 있어봐야 허탕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변적인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주님의 옷을 만지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을 갖고서 주님의 옷을 만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님 가까이 있으면서도 주님을 만지지 못합니다. 교회에 나오고 성경 읽고 찬송 부르고 기도하지만 아직 우리는 구경꾼의 믿음일 뿐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화학적 반응도 없습니다. 구경꾼들의 믿음 가운데는 기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거기에 아무 기대도 감격도 없기에 기적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지지 못하는 믿음은 절대 나를 낫게 하거나 새롭게 하지 못합니다. 믿음의 스킨십이 발생할 때 거기에 기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치유의 권능이 나타납니다. 이 여인은 기대가 있었고, 필사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반드시 이 분을 만나면 내 해묵은 병이 낫는다는 믿음 말입니다. 그래서 무리가 있었으나 오직 그 여인에게만 주님의 치유의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이 여인이 주님 옷가에 손을 대자, 그 순간 주님이 자기 몸에서 능력이 빠져나감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누가 내 옷에 손을 댔느냐?’, ‘누가 믿음으로 내 옷을 잡았느냐?’고 물으신 겁니다. 그런데 여인도 주님 옷가에 손을 대는 순간, 자신의 온몸으로 혈루 근원이 말랐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다 혈루증 환자들입니다. 피는 생명인데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피를 흘리며 생명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이 병을 고치기 위해 그동안 우리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좋은 음식, 좋은 약, 좋은 환경, 좋다는 운동을 하며 필사적으로 자기를 관리해 왔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요즘 다 건강하십니까? 피 안 흘리고 사십니까?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생명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우리는 다 피 흘리고 사는 혈루증 환자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 소용 없습니다. 어떻게든 믿음으로 주님 옷에 손을 대야 합니다. 돌에 맞을 각오를 하고 몰래 숨어서라도 주님 뒤로 접근해서 믿음으로 주님 옷을 잡아야 합니다. 그것만이 살 길입니다. 그것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이 여인을 보십시오. 12년간 명의란 명의는 다 찾아다녔고, 재산도 다 썼지만 병증만 더 중해졌습니다. 그러나 주님 만나서 뒤로 몰래 가서 옷가에 손을 대니 다 나았습니다. 우리도 그 길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야만 삽니다.
주님이 ‘누가 내 옷에 손을 댔느냐?’고 물으셨을까요? 설마 주님이 몰라서 이렇게 물으셨겠습니까? 43절에 보면 ‘딸아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인을 평안히 돌아가게 하기 위해 선처하셨습니다. 몰래 주님의 능력을 훔쳐서 달아났다면, 그 여인의 일평생이 어떠하겠습니까? 육체적으로는 병이 나았을지 모르나 그 마음은 몰래 주님의 능력을 훔쳤다는 것 때문에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이 ‘누가 내 옷에 손을 댔느냐?’고 하시며 그 여인을 찾으신 겁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이실직고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안히 가라. 모든 병에서 놓여나라. 자유하라. 건강하게 살아라!’고 하신 겁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녀의 건강, 마음의 평안,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냥 도망쳤다면 어떻게 육신의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평강까지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두려워 달아나려는 그 여인을 가로 막으시며 주님은 그녀의 영혼과 마음을 평안케 하신 겁니다. 그 어떤 부끄러운 아픔, 피 흘리는 고통, 아무리 부정한 병, 남에게 드러낼 수 없는 나만의 깊은 상처도 믿음으로 주님 옷가를 만지면 다 해결됩니다. 주님의 무한하신 권능의 기가 내 안으로 들어오면서 다 낫습니다. 믿음으로 주님 옷가에 손을 댑시다.
35절 이하를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딸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 주님은 야이로 딸을 고치기 위해 가다가 혈루증 여인을 만난 겁니다. 그래서 시간을 지체하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전갈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야이로를 격려하십니다. 야이로 집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울며불며 난리입니다. 그때 주님은 ‘울지 말라. 아이가 죽은 게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다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야이로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은 죽은 네 딸도 살리신다고 믿었습니다. 주님은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고 하시자 그 소녀가 정말 일어났습니다. 나이가 12살입니다. 그러자 비웃던 사람들이 크게 놀라고 놀랐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주님 옷가에 손을 대시면 육신의 병뿐 아니라 마음의 병도 고치고, 죽은 딸도 살립니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는 겁니다. 불치의 병뿐 아니라 죽은 야이로의 딸도 주님은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믿음으로 주님과 스킨십을 하십시오. 그렇다면 여러분의 모든 병마가 떠나며, 주님의 무한하신 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남은 여생이 훨씬 더 강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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