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촌의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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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로(寒露)가 며칠 전이었습니다. 찬이슬이 나뭇가지나 풀잎에 구슬처럼 맺히고 서늘한 기운이 뻗치면서 가을이 더욱 깊어간다는 절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10월 중순입니다. 해마다 10월은 좀 특별합니다. 산하가 빨갛고 노랗게 물드는 다채로움에다 온갖 열매들이 주는 풍요로움과 함께 애잔함, 쓸쓸함도 느껴지는 계절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웰빙촌 밭둑에는 샛노란 돼지 감자꽃이 만발했습니다. 돼지 감자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아름다움과 청초함을 과시하는 가을 꽃입니다.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고 길섶에 핀 쑥부쟁이꽃 여귀꽃도 몹시 정겹습니다.
올 가을 농사는 비교적 괜찮습니다. 벌써 결구에 들어간 배추는 작황은 좋은데 지난 여름 너무 오래 지속된 무더위 탓인지 벌레가 보통 극성이 아닙니다. 아침 일찍 잎사귀를 들춰가며 나무젓가락으로 일일이 잡아줘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못해 아주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것도 있습니다. 김장 무는 씨를 뿌리고 권권사님이 두어 번 솎아 주셨는데 잎도 무성하고 뿌리도 튼실해 보입니다. 여기저기 야생으로 자란 들깻잎들이 벌써 노란색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 농사의 백미는 역시 고구마! 그 동안은 고라니 때문에 한 번도 제대로 수확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작년에는 순이 나오는 족족 몇 번이고 다 먹어버려서 여섯 고랑을 심고도 결국 한 톨도 수확하지 못해 허무했는데 지난 겨울 그 골짜기에서 고라니 두 마리가 죽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정말 올해는 거짓말처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웰빙촌 구석구석을 제 안방 드나들 듯 하던 고라니가 갑자기 사라진 것입니다. 내가 너무 미워했나 싶어 미안하기도 하고 더 이상 볼 수 없게 돼 서운한 감도 없지 않지만 덕분에 고구마 수확은 한 번 제대로 하게 된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현재 일곱 고랑 가득 넝쿨과 줄기, 잎사귀가 엉켜 무성한데 이달 말쯤 캐야 될 듯합니다. 수확을 앞둔 지금 쯤 통통한 순을 골라 꺾어 김치를 담그면 그만인데 … 질긴 껍질을 벗기고 양념에 버무려 돌돌 말아 입에 넣으면 입안 가득 고구마향이 퍼지면서 착착 달라붙는 맛이 일품입니다. 도라지는 다 캤습니다. 밭장로님이 심은 지 4년이 넘은 것이어서 더러 썩기도 하고 땅심도 다 된 듯하여 몽땅 캐내 밭장로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올 고추 농사는 접었습니다. 모란장에서 모를 사다 정식한 것인데 껍질이 너무 두껍고 맛이 별로여서 풋고추도 그리 인기가 없었고, 붉혀도 봤지만 말리기가 힘들어 머뭇거리는 사이 탄저병이 와서 다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쪽파는 올해도 오춘화 권사님이 친정에서 공수해온 아주 실한 놈으로 심었는데 거름도 제대로 못한 박토에서도 꿋꿋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상추와 쑥갓, 아욱은 골을 타지 않고 그냥 흩뿌렸는데 지난 번 폭우에 쓸려서 그다지 건질 게 없어졌습니다.
내년부터는 경작 면적을 절반 이하로 줄일 생각입니다. 아랫 밭은 이미 금년에도 부분적으로 부치고 계시는 외부 어르신께 모두 양보하고, 윗밭 3백여 평만 관리할까 합니다. 요즘 웰빙촌은 그야말로 한 폭의 수채화 같습니다. 오늘은 농막 앞에서 본 하늘이 유난히 맑아 문득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대사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이같이 높고 푸른 하늘을 예전에는 내가 왜 쳐다보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