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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6m 세미한 음성(왕상 19:9-14)

20131006m

왕상 19:9-14

세미한 음성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본문 앞장인 열왕기상 18장 17절 이하를 보면 엘리야가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도합 850명과 세기의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진검승부를 한 것입니다. 누가 이깁니까? 홀홀 단신으로 우상의 선지자들과 맞서 싸운 엘리야가 통쾌한 승리를 거둡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거짓 신으로 혹세무민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한 명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여 기손 시내로 끌고 가 거기에서 단칼에 다 처단합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누가 듣습니까? 아합 왕의 왕후요 열열한 바알 신봉자인 이세벨이 듣고 이를 갑니다. 그리고 바알 앞에서 복수를 맹세합니다. 군사들에게 엘리야를 잡아들이라는 수배령을 내립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혈기 충천해서 기개가 하늘을 찌르던 엘리야가 미친 듯이 광야로 도망합니다. 며칠 동안 먹지 못하고 도망하다가 탈진해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져 하나님 앞에 앙탈을 부립니다. 험한 꼴 보기 전에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물과 떡을 주시며 기운을 차리게 합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니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엘리야를 인도하십니다. 본문은 여호와의 산인 호렙에서 엘리야가 본 신비체험입니다.


갑자기 크고 강한 바람이 불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숩니다. 바람이 얼마나 강하면 산이 갈라지고 바위가 부서지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권능과 위엄을 나타내기에 딱 좋은 계시처럼 보였습니다만,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모든 것을 순식간에 삼키는 불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에서도 하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제일 마지막 현상인 세미한 소리와 함께 하나님이 출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강력한 바람으로, 가공할 지진으로, 무시무시한 불로 이세벨을 한 입에 삼키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은 우리 기대와는 달리 세미한 소리와 함께 나타나십니다. 사실 누가 잘못을 하거나 죄를 지으면 당장 강한 바람이나 지진, 불로 심판하신다면, 감히 누구도 죄 짓고 살지 않겠지요. 이 세상에는 아마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잘못했다고 당장에 벼락을 친다면 어떤 사람이라고 하나님을 안 믿겠습니까? 우리는 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지 않고 언제나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이게 바로 계시의 비밀이요 신비고, 또한 함정입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들이 형편없이 사는 이유고, 믿지 않는 이들이 방자한 이유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주님이 여러 가지 비유로 천국을 말씀하십니다. 거기에 보면 천국이 얼마나 하찮은 모습으로, 우습고 허약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와 있는지 모릅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보십시오. 악한 자가 와서 천국 말씀인데도 빼앗아 갑니다. 돌밭에 뿌려진 것은 환난이나 박해 앞에서도 가차 없이 넘어집니다. 이런 게 천국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천국 가는 걸 우습게 압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은 세상 유혹에 약합니다. 천국이 굉장한 바람이나 지진, 불이라면 그렇겠습니까? 그런데 세미한 음성이기에 만만하고 우습게 봅니다. 역시 마태복음 13장의 가라지 비유도 그렇습니다. 가라지와 밀, 피와 벼, 깜부기와 보리, 잡초와 채소 그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잘 자랍니까? 가라지가 훨씬 더 잘 자랍니다. 뿌린 적도 없고 물도 안 주고 매 준 적도 없는데 늘 그렇게도 잘 자랍니다. 잡초 때문에 농사를 못 짓습니다. 논에서 피 뽑기 해보셨습니까? 전에는 학생이나 군인들도 피 뽑기에 동원된 적이 있습니다. 논에서 피 뽑을 때 어떤 것이 피고 벼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조건 벼보다 큰 것은 다 피입니다. 교육할 것도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늘 속상하고 약올라하는 게 이것입니다. 늘 저쪽이 더 잘 되냐는 겁니다. 늘 가라지가 더 무성하냐는 겁니다. 알곡이 더 잘 자라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전도에 도움이 되고, 잡초들의 코도 납작하게 만들텐데 잘 되는 쪽은 이쪽이 아니라 항상 저쪽입니다. 알곡이 항상 열세입니다. 가라지나 피, 잡초가 항상 성합니다. 이 얼마나 약오릅니까?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자주 시험에 들고 낙담에 빠집니까? 


엘리야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쫓겨 다니며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죽여 달라는 겁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정의로우시면 어째서 인간사에 의로운 자가 못 사는 이런 모순이 있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이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키 크고 잘 생기고 공부를 못하면 욕을 더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공부도 못하는데 얼굴이라도 예쁘고, 키라도 커야지 라는 게 하나님의 답입니다. 그래서 키 큰 사람 치고 공부 잘 하는 사람 없습니다. 저는 적어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키 작은 사람이 공부마저 못했다면 살아서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정말 하나님은 무섭도록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저 사람은 죽으면 지옥 밖에 갈 데가 없는데 살아서 좋은 것 먹고 잘 입고 돈이라도 펑펑 쓸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여기서도 고생하고 거기 가서도 고생하면 얼마나 불쌍하냐는 겁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악한 사람이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이유요, 가라지가 훨씬 더 웃자라는 이유입니다. 피가 벼보다 훨씬 웃자라 알곡을 비웃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공평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부하고 강한 가라지를 샘내지 마십시오. 추수 때까지입니다. 추수 때 알곡을 곳간에 가라지는 타는 불입니다. 지금은 알곡들을 비웃지만 마치 메뚜기가 한철이듯 오직 추수 때까지입니다. 그래서 악인들의 영화도 잠깐이요 의인들의 고난도 잠깐입니다. 우리들이야 영원히 복된 세계로 갈 사람들인데 여기서 좀 고생하고 억울하면 어떻습니까? 좀 손해보고 욕 좀 먹으면 어떻습니까? 여기서 돈 좀 없고, 잠 좀 못자고, 먹고 싶은 것 덜 먹고, 갖고 싶은 것 덜 가지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영원히 최고의 행복을 누릴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겨자씨 비유입니다. 겨자씨는 눈에도 잘 안 띄는 씨앗인데, 주님은 하필이면 천국을 그 씨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천국의 존재를 모릅니다. 저 작은 씨가 자라서 나무처럼 되리라는 상상을 아무도 하지 못합니다. 다 무시합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입니까? 여러분, 천국은 지금도 세미한 소리로, 그렇게 작은 겨자씨 한 알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여러분,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요란할 것 같고, 대단할 것 같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겨자씨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전혀 그럴듯하지 않은 모습으로 예상치 못하는 모습으로 지금도 우리의 허를 찌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입니다. 우리 옛 시조에도 ‘옥에 진흙이 묻었으니 오는 이 가는 이가 다 돌이라 하더라’는 것처럼 천국이 딱 그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실은 돌이 아니라 옥을 알아본 사람은 재산을 팔아 그걸 산다는 겁니다. 전 재산을 팔아 왜 저 돌짝밭을 사냐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게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 미쳤다고 합니다. 천국은 지금도 그렇게 전혀 천국답지 않은 모습으로 초라하고, 왜소하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감추어 있습니다. 그래서 발견도 못하고, 발견했다 해도 그 가치를 몰라보고 자기의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사겠다는 사람이 드물다는 겁니다. 목숨까지 내놓고 천국을 사야함에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천국은 아직 주인을 만나지 못한 보화입니다. 흙 묻은 진주로 숨겨져 있습니다. 


한 번은 옥에 갇힌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제자를 보내, ‘당신이 정말 성경이 예언한 메시아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의 선구자로 왔던 세례요한조차도 헷갈렸다는 겁니다. 주님이 세례요한의 기대에도 못 미쳤다는 겁니다. 그래서 확인사살차 제자들을 보낸 겁니다.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입니까?’ 산을 가르는 바람소리를 기대했는데, 잘 들리지도 않는 세미한 소리라는 겁니다. 실은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천국 때문에, 주님 때문에 실족하는지 모릅니다. 굉장한 걸 기대했는데 그런 기대에 천국이 전혀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나 때문에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실족하지 않습니까? 엘리야처럼 세미한 소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반드시 생각하며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6장 26절 이하에서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보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 한 마리를 생각하고, 오늘 있다가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 하나를 깊이 사색하는 겁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세미한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무턱대고 살면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습니다. 요즘 많이 피는 호박꽃이라도 한 번 살펴보십시오. 호박꽃은 꽃 자체도 예쁘지만, 한국인의 식탁에서 호박 넣고 끓인 된장국은 최고 아닙니까? 저는 날아가는 새가 아니라 언젠가 설악산에서 본 송충이 한 마리를 잊지 못합니다. 어쩌면 색깔이 그리도 아름답고 고운지 모릅니다. 이슬을 쓰고 아침 햇살을 받는데 환상이었습니다. 쏘지만 않으면 한 마리 주머니에 넣어와 기르고 싶었습니다. 저 산의 송충이를 생각하십시오. 주말 농장의 호박꽃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사람들이 못 생겼다고 하는 호박꽃도 저렇게 곱게 피우시고, 사람들이 다 징그럽다고 하는 설악산의 송충이도 저렇게 정교하게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이 하물며 너희를 돌보지 않겠느냐? 너희를 굶기시겠느냐?고 하십니다. 송충이도 굶기지 않는데다 거기에 아름다운 색을 칠하십니다. 호박꽃도 그토록 신비하게 하나님이 피우십니다. 그런데 하물며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그냥 버려두시겠냐는 겁니다. 그런 세미한 음성을 거기에서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생각해야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할까요? 비록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은 미국 땅입니다. 대한민국 서울에 있지만 그곳은 미국의 법과 주권 하에 있기에 비록 대한민국 서울 심장부에 있지만 미국의 영토입니다. 그래서 시위대가 무단으로 미 대사관을 침입하면 미국의 영토와 주권을 침해한 국제법상의 범죄가 되는 겁니다. 주한미군 또한 미국 국민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복무하지만 미국 국민입니다. 미국 국적,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나라에 살지만 미국법과 그 주권에 따릅니다. 오늘 우리도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 살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천국 시민들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주한 천국 대사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한 미군이 아니라 주한 십자가 군병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법을 관철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할 필연적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주한 미 대사나 주한미군은 비록 우리나라 땅에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명을 따릅니다. 우리 또한 이 땅에 살지만 주님의 뜻과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명실상부한 천국 백성이요 시민입니다. 이 가을에 세미한 주의 음성을 듣고 깊이 사색하며 우리에게 향한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살기를 결단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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