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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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우리는 이웃집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알았더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 어르신이 계신지 안 계신지도 모릅니다. 누구도 그런 걸 알 필요조차 못 느낍니다. 그래서 요즘은 혼자 사시는 노인네가 화장실에서 자빠져도 아무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습니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느라 사치스런 노후 준비 따위는 꿈도 못 꾸셨던 수많은 어르신들이 말년을 혼자 외롭게 사시다 홀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참 견디기 힘든 고독이요 슬픔입니다.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게 인생이라지만 그럼에도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게 혼자 죽음을 맞는다는 건 쓸쓸하다 못해 비참한 노릇입니다.
저는 생일이 사월초파일입니다. 날이 날인만큼 무임승차를 할망정 해마다 생일이 참 성대합니다. 잊고 있다가도 거리에 연등이 내걸리기 시작하면 <또 왔나 보다!> 합니다. 그러나 제게는 제가 태어난 날보다 죽는 날이 비록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라도 기억되기를 바라는 욕심이 있습니다. 물론 제 주제를 모르는 터무니없는 허영일 것입니다. 요즘 같은 세태 속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무튼 지켜보는 이 하나 없이 홀로 생을 마감하고 그 시신조차 한참 지나서야 발견되는 죽음, 고독사.
요새 유행하는 이 신종 죽음에는 개인주의, 이기주의라는 현대문명의 그늘과 아픔이 짙게 배어있습니다. 올 초에도 부산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이미 6년 전에 숨진 한 남성이 백골 상태로 발견된 적이 있는데 며칠 전에도 역시 부산의 한 주택에서 숨진 지 5년 정도로 추정되는 60대 여성의 백골 시신이 또 발견됐습니다. 죽음이란 원래 쓸쓸하고 슬픈 거지만 이분의 죽음이 더욱 슬펐던 것은 평생 독신으로 산데다 이복형제가 하나 있을 뿐 다른 가족은 전혀 없었습니다. 다세대 주택에서 살았지만 이웃들의 관심으로부터도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월 10만원 방세가 수년째 밀렸지만 보증금 7백만원에서 차감할 줄만 알았지 집주인조차 단 한 번도 그의 안부를 확인해 보지 않았고 기초생활 수급자도 아니어서 행정력도 미치지 못해 결국 사망한지 5년이 지나도록 그 방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유일한 혈육인 이복형제마저 시신수습을 거부해 그냥 무연고자로 처리, 행정절차를 밟았다는 보도입니다. 착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갑니다. 남도 아닌데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은 좀 챙겨주지 하는 아쉬움이며, 이웃과 집주인 역시 참 박절하고 무심했다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옷을 아홉 겹이나 껴입고 손에는 목장갑까지 끼고 반듯하게 누운 채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는 기사에서 보듯 이런 극빈자가 기초생활 수급자가 아니었다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 대상자라는 것인지도 이해가 안 되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부촌인 타워팰리스에 살면서도 기초노령연금을 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최근의 보도는 또 무슨 말인지....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축하와 축복을 받지 못하는 출생과 애도를 받지 못하는 죽음보다 더 안타깝고 쓸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팍팍하고 비정한 세상이라지만 겨울철에 난방도 못하고 옷을 아홉 겹이나 켜켜이 껴입은 채로 죽어 그 시신조차 수년이나 지나서 발견되는 이런 참혹한 비극만큼은 절대 없어야 합니다.
외로운 삶 고독한 죽음, 고인께 삼가 용서를 빕니다. 고독사한 누가복음 16장의 노숙인 나사로처럼 부디 이제 모든 슬픔과 추위와 고단함을 잊으시고 아브라함의 품에서 편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