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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여호와는(사 33:22-24)

대저 여호와는

사 33:22-24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언어에서 인간의 사유활동이 시작되고 나아가서는 인류문명의 발전이 이뤄진다는 얘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언어가 없었다면 생각도, 소통도, 관계도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특히 우리에게는 <고백>이라는 중요한 언어의 기능이 있습니다. 고백이란 대개 마음의 느낌과 생각, 의지를 말로 표현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누구의 고백을 듣는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전체와 만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고백은 진지하고 신중한 것이고 또 그 고백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을 때는 더 더욱 신중하고 심각한 것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재판장 우리의 왕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22절).

맞습니다. 이 고백은 진실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재판장>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판단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겨야 하고 또 거기에 전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율법을 제시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재판과 판단의 기준과 원칙을 세우신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여호와는 영원하신 재판장이시며 율법을 세우신 입법자시며 이 세상과 역사에 대한 최후의 심판주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며 스스로 충족하시며 홀로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주권자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고백하는데 주저하거나 인색하거나 태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며 신앙고백을 듣고 싶어 하셨고,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마 16:16)하고 고백하여 주님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다윗도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시 71:3)라고 고백했습니다. 당신은 주님께 어떤 고백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실 자

<…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22절).

사도행전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4:12)고 했습니다.

다른 이름은 없음을 확신하시고 거듭 고백하십시오. 요즘 큰 위협이 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다른 이름도 인정한다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이름이 다를 뿐 궁극적인 실체는 같다고 합니다. 정상은 하나지만 그 정상을 오르는 길은 다양하므로 타 종교를 용납하고 인정함은 물론 각 종교가 내세우는 구원자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단히 관대하고 합리적인 주장 같지만 성경의 가르침과는 철저하게 배치되는 잘못된 논리입니다. 성경은 오직 주님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합니다. 주님 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흔들리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