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08m: 천 대까지!(출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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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8일 주일낮예배/어버이주일
본문: 출 20:3-6
제목: 천 대까지!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5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이런 말씀을 그저 성경에 나오는 얘기로만 생각합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건성으로 듣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유전은 부모의 성질이 유전인자를 통해 자손이나 후손에게 대물림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를 닮고 자손은 조상을 닮습니다. 유전현상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이 유전질서를 피해갈 수 없습니다. 누구도 유전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유전은 이런 생물학적인 유전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능이나 재능, 성격, 정서, 인간성, 도덕성도 유전이 됩니다. 이런 정신적인 부분도 유전됩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유전도 있습니다. 축복, 저주, 죄, 은혜도 유전됩니다. 생물학적 유전보다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유전이 훨씬 더 심각합니다.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 문진표를 작성합니다. 거기에서 항상 묻는 게 가족 병력입니다. 다 유전병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도 저주도 은혜도 축복도 유전됩니다. 절대 당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유전질서 속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 유전보다는 정신적 영적 유전이 훨씬 철저하고 무섭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부모나 윗대로부터 내려오는 나쁜 집안 내력 때문에 저주 속에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버지가 술로 패가망신하면 자식도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 꼴로 살아갑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노름으로 패가망신했는데 자식도 그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유전현상입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성경에도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갔을 때 미인이었던 아내 사라 때문에 신변에 위기를 느끼자 자기 누이라 속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인 이삭도 아내 리브가의 미모 때문에 곤경에 처하자 자기 누이라고 속입니다. 그 이삭의 아들 야곱 한 번 보십시오. 염소를 잡아 사냥한 고기라며 별미로 만들고 그 염소의 가죽을 목과 팔에 감아 아버지 이삭을 속입니다. 그렇게 야곱은 형이 받아야 할 장자의 복을 가로챕니다. 야곱도 마찬가지로 당합니다. 야곱의 아들들도 가장 총애하던 요셉을 애굽에 팔고는 아버지 야곱에게 요셉이 죽었다고 속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연을 가장한 유전입니다. 거짓의 유전입니다. 죄의 대물림이며 악순환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물학적 유전이나 정신적 유전까지는 인정하면서도 영적인 유전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무지한 상태입니다. 영적인 유전이 얼마나 우리 삶에 변수가 되는지를 모릅니다. 아담의 죄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아담의 죄 때문에 내가 벌을 받아야 하느냐고 합니다만, 이것은 영적인 유전을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내 조상이 김씨여서 내가 김씨인 겁니다. 이게 유전이듯이 누구도 아담의 죄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경건치 못한 자는 경건치 못한 것을 자손에게 대물림합니다. 헤롯의 가계를 보십시오. 헤롯 대왕은 두 살 이하의 영아를 살해한 잔혹한 왕이었습니다. 그 다음 제2대 왕이 그의 아들 헤롯 안디바스였습니다.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를 빼앗습니다. 그 사실을 세례 요한이 성토하니 그의 목을 잘라 소반에 담아 헤로디아에게 주었습니다. 3대 왕은 헤롯 아그립바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살해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좋아하니까 베드로까지 살해하려고 체포했던 왕입니다. 제4대 왕은 헤롯 아그립바 2세입니다. 바울을 체포하여 심문한 왕입니다. 헤롯 가문은 헤롯 아그립바 2세에서 끝납니다. 죄가 죄를 낳고, 저주가 저주를 부르다가 완전히 망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흔히 부모들은 나는 비록 실패하지만, 나는 이렇게 살지만, 내 자식이나 후손들은 이런 삶을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불행이나 아픔이 내 세대에서 끝나고 자식 세대에는 뭔가 달라지길 진심으로 기대하고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거저 되지 않습니다. 돈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죄와 저주의 악순환, 대물림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노아의 아들들 아시지요? 함, 셈, 야벳입니다. 특히 함의 자손은 가나안 족속입니다. 함과 가나안 족속은 철저하게 저주를 당했습니다. 창세기 9장을 보면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하의 실종 상태로 잡니다. 셈과 야벳은 뒷걸음질을 쳐서 부친의 하체를 가렸지만, 함은 흉보고 다녔습니다. 후에 술에서 깨어난 노아가 그 사실을 알고 함에 대해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함이 잘못했는데 저주는 함뿐 아니라 그 후손인 가나안 족속에까지 선언됩니다. 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십니다. 가나안 족속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어린아이와 짐승까지도 다 죽이라고 합니다. 거기에서 함의 족속이 멸절당합니다. 이게 바로 함과 저주받은 함의 후손인 가나안의 최후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 멸망의 대열에서 열외 된 사람입니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입니다. 어린아이와 짐승까지도 다 죽임을 당하는 여리고 성에서 구사일생합니다. 후에 이스라엘 사람과 결혼해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과 결혼해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습니다. 이새는 다윗을 낳습니다. 다윗의 계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반전이고 축복입니까? 그렇다면 라합은 어떻게 해서 자신을 지배하던 저주의 사슬을 끊고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습니까?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신실한 하나님이시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복을 베푸신다.’ 라합은 창녀였고 저주 받은 족속의 딸이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반열에 들었습니다. 저주는 항상 죄의 결과입니다. 누구든 주님의 보혈로 죄씻음을 받으면 운명이 바뀝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도 전에는 다 온갖 더러운 귀신, 저주와 재앙이 우리의 가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함부로 이사도 못했습니다. 귀신에게 날을 받아 와야 했습니다. 조상의 묘도 함부로 못 썼습니다. 귀신이 허락해야만 했습니다. 길을 나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써 그런 저주의 굴레에서 벗어났습니다. 아직도 날 받아서 결혼하고 이사하십니까? 그것은 가짜입니다. 아직도 귀신에게, 저주에게 끌려다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운명과 가정과 가계에서 귀신과 저주의 기운이 다 물러갔습니다. 집안을 말끔히 소제하고 저주와 재앙의 고리를 다 끊어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운명과 가정과 가계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두 번 다시 마귀의 저주가 우리의 가계를 넘보지 못하도록 단단히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요 책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부분에 철저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3절 이하입니다.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분명 주님의 권세로 귀신이 쫓겨 났습니다. 이제 그 사람의 운명과 가정과 가계는 주님의 보혈로 깨끗해졌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귀신을 보십시오. 쫓겨나서 돌아다니다 다시 한 번 그 집에 돌아옵니다. 그런데 집이 깨끗이 청소된 채 텅 비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더 지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똬리를 튼 겁니다. 우리가 늘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분명 믿음으로 대물림되는 저주를 끊었는데도 여전히 마귀의 농락에 당하며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깨끗해졌으면 이제 성령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내 심령과 삶이 성령의 전이 되게 해야 합니다. 성령이 나와 내 가정과 가계를 지배하게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청소만 하고 비워 두기 때문에 나갔던 귀신이 다시 돌아와서 제 동료들까지 부르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 형편이 이전 형편보다 더 어려워집니다. 주님이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이 악한 세대가 이렇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여러분, 진심으로 조상의 망령된 행실과 저주로부터 자유하기를 바라십니까? 진심으로 여러분의 자녀가 잘 되고 천 대까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진심으로 더러운 귀신과 저주로부터 여러분의 가정을 지키길 원하십니까? 무당 찾거나 점쟁이 찾지 마시고 주님을 찾으며 신뢰하고 의지하십시오. 소제되고 수리된 집을 빈 집으로 방치하지 마시고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그게 바로 가계를 통해 흐르는 무서운 저주의 맥을 끊고 조상으로부터 대물림 되는 온갖 저주를 막는 유일한 길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이 천 대까지 복을 누리며 사는 길이 바로 주님을 신뢰하며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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