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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30922m 사색의 계절(호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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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30922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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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호 1: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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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사색의 계절</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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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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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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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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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우리는 주님의 12제자를 아포스톨로스, 즉 사도라고 합니다. 사도의 제자는 교부라고 부릅니다. 초대 교부 가운데 유명한 오리겐이 있습니다. 그분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입니다. 교리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분입니다. 185년에 출생하여 254년에 소천한 분입니다. 하여간 이분은 천재적이었습니다. 수사학의 대가였고, 물리학, 수학, 천체학, 그리스 철학, 신학에 정통했던 분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주석을 다 썼습니다. 수많은 교리서도 남겼습니다. 이분의 전체 저작이 약 2000권이라고 하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분은 어거스틴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입니다. 오리겐이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책을 많이 썼고,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2-3세기 사람인 오리겐의 책이 오늘날까지도 전해질 수 있을까요? 오리겐은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9장 12절을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로 거세한 것입니다. 학문적으로도 워낙 천재적인 분이고 경건생활에 있어서도 스스로 고자가 될 만큼 지독한 분이어서 많은 사람이 그를 존경했는데, 특히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오리겐이 책 한 권을 쓰면 그 여성 제자들이 매달려 순식간에 필사를 했습니다. 그 시대는 책을 써봐야 서너 권씩 나올 수밖에 없던 때인데, 오리겐의 책만큼은 수백 권이 양산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그의 책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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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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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구약성경 39권 가운데 선지서가 있습니다. 16권입니다.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입니다. 이 가운데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로 구분합니다. 대선지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입니다. 소선지서는 그 외 성경들입니다.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말라기 등입니다.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를 나누는 기준은 단순하게 책의 분량입니다. 업적의 경중이나 다소 또는 인격의 차이가 아닙니다. 호세아서의 경우는 전체가 14장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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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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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소선지서에 속한 호세아서의 주인공은 호세아입니다. 호세아는 히브리식 이름입니다. 뜻은 구원입니다. 이것을 헬라식으로 표기하면 예수입니다. 예수의 뜻도 구원입니다. 호세아는 주님 이름과 같습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계시일까요? 왜 두 사람의 이름이 같을까요? 그러면 이름만 같습니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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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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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호세아는 지금 우리나라처럼 분단된 이스라엘의 북왕국 출신입니다. 그의 활동무대도 당연히 북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본문 1장 1절을 보면,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라고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왕들의 이름이 거의 남왕국 유다의 왕들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북이스라엘의 왕 이름은 여로보암 뿐입니다. 호세아 동시대의 북이스라엘의 다른 왕들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정통성은 북이스라엘이 아니라 남왕국에 있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호세아는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맹목적인 소속감이나 편견, 지역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신앙의 정통성과 민족의 주체성을 바르게 계승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대단히 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호세아서 4장 15절을 보면, 북이스라엘은 비록 타락해도 남왕국 유다만큼은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다윗의 전통과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하는 남왕국에 소망을 두고 살았기에 비록 북이스라엘 출신이지만 남왕국이 하나님 앞에 바로서기를 원했던 사람입니다. 주님도 결국 남왕국 유다지파인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을 꿰뚫어 본 것입니다. 호세아는 왜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만 언급했을까요? 다른 왕들은 다 쿠데타로 집권한 사람입니다. 정통성에 문제가 있던 왕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 왕들만 언급하고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한 사람만 언급했습니다. 호세아는 바로 이런 인물입니다. 얼마나 결백하고 강직하고 원칙과 전통을 존중하던 사람인지 모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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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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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날벼락입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입니다. 원래 선지자는 자기 백성 중 순결한 처녀를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호세아를 불러 음란한 여자를 취해 결혼해서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곤혹스런 명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때가 주전 8세기니까, 이때는 선지자의 세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미가, 요나가 활동하던 시대였습니다. 이런 명령을 받은 사람은 호세아뿐입니다. 선지자라는 사람이 세상이 다 아는 음란한 여자와 결혼을 하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며 선지자 활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의 선포를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호세아의 이야기는 비유가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만약 가상의 인물이었다면 그냥 고멜일텐데, 고멜의 부모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호세아는 역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의 강직한 인품이나 정서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말씀임에도 거기에 복종합니다. 실제로 그 고멜을 자기 아내로 삼습니다. 결혼한 후에도 고멜은 제 버릇 남 주지 못합니다. 툭하면 가출을 일삼고,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외도하고 남의 자식까지 낳습니다. 호세아 3장을 보면 고멜이 인신매매를 당해 팔려가기까지 하는데, 호세아가 비싼 몸값을 지불하고 사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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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하나님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가혹한 사건을 연출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강직한 호세아가 악명 높은 음녀인 고멜을 맞아 고통당하는 사건보다 훨씬 더 불가사의한 사실이 있음을 계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를 신부로 삼으신 사건입니다. 이것은 호세아가 고멜을 아내로 맞은 사건보다 훨씬 더 말도 안 되는 사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호세아는 주님의 모형이요 그림자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가장 생생하고 역동적인 주님의 모습이 호세아입니다. 그래서 호세아와 주님의 이름이 같습니다. 고멜은 누구입니까? 두 말할 것 없이 오늘 우리입니다. 이 시대의 고멜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실만큼은 깊이 사색해야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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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9 -->
<p class="p1">우선 사랑입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여인임에도 주님이 기어이 그녀를 신부로 맞게 하는 사실에서 주님의 이 기막힌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의 신부가 된 후에도 우리가 얼마나 자주 외도하고, 우상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세상과 눈이 맞아 가출했습니까? 그럴 때마다 주님이 얼마나 자주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호세아를 통해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을 처절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호세아서의 주제는 &lt;여호와를 알자&gt;입니다. 호세아서 4장에 보면, “이 백성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실제 그의 삶을 통해 생생하게 연출한 주님의 불가사의한 사랑을 깊이 깨달읍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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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1 -->
<p class="p1">다음은 주님의 아픔, 주님의 눈물입니다. 지독한 원칙주의자요 다윗의 혈통을 중시한 정통주의자 호세아가 천하의 음녀인 고멜을 아내로 맞았으니 얼마나 아픔이 컸겠습니까? 그런데 호세아의 괴로운 심정, 뼈아픈 고뇌가 그대로 우리를 당신의 신부로 삼으셨던 주님의 아픔이요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피눈물 흘리는 아픔을 깊이 사색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신부로 맞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로 인해 아파하고 괴로워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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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3 -->
<p class="p1">주님의 사랑뿐 아니라 주님의 아픔도 깊이 사색하십시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알고 주님의 뜻을 깊이 헤아리기를 기원합니다. </p>
<!-- paragraph:p0024 -->
<p class="p1"><br></p>
<!-- paragraph:p0025 -->
<p class="p1"><br></p>
<!-- paragraph:p0026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JwuipXNPOr0"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