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과 고통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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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가톨릭 신부이자 정신상담가로 유명한 토마스 무어(Thomas Mooer)는 <영혼을 돌보는 일>(Care of the Soul)이라는 자신의 저작에서 은퇴를 앞둔 어느 노사제 얘기를 합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깊은 허무감을 느끼며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 나름대로 이제껏 후회 없이 살아 왔다고 자부했지만 자기가 사역하던 교구에서 발생한 어떤 사건으로 큰 상처를 입고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제는 생생한 꿈을 꿉니다. 아주 가파른 어떤 층계를 내려가는데 갑자기 통로가 좁아지면서 더 이상 내려가기도 힘들고 또 내려가고 싶지도 않은데 뒤에서는 어떤 여자가 자꾸만 빨리 내려가라고 강요를 해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없노라며 강하게 저항 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계단 끝에는 깊은 수렁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몹시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다 꿈을 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꿈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토마스 무어는 그 노사제에게 이렇게 말해 줍니다. <당신은 지금 과거와 미래에 닥칠 인생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현실에 대해 발걸음 내딛기를 극도로 주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인생이 실패라고 느끼는 사람은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꿈은 당신의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는 희망적인 꿈입니다.>
다분히 프로이트적인 해석입니다. 토마스 무어는 그 꿈에서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좁은 출생의 계단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인간의 원초적 체험의 상징성을 이끌어 냅니다. 노사제는 토마스 무어의 그런 해석에 무척이나 놀라워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에서 오직 불안과 두려움, 어두움만 보았을 뿐 그 어떤 희망의 메시지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노신부가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말에 토마스 무어가 이렇게 답합니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예정보다 일찍 태어나도 문제입니다.> 그때 비로소 노사제는 안도하며 자신의 삶에 닥친 시간의 의미를 보다 차분하게 성찰할 수 있게 되었고 소진한 기운도 많이 회복할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그 좁디 좁은 계단을 내려가며 처음에는 어둡고 음습한 터널처럼 보이던 통로 끝에서 마침내 밝고 환한 새로운 출구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누구나 방황과 고통은 견디기 힘들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깨닫게 하는 값진 은총의 시간입니다. 그런 과정이 없으면 우리는 끝까지 성숙의 아픔은 치르지도 않고 열매만 취하겠다는 철부지 어린 아이로 남을 뿐입니다. 때로 우리의 아이들이, 혹은 우리 자신이 좁은 길을 만났다고 너무 불안해하거나 오직 그걸 불행이라고만 여기지는 마십시오.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삶의 기쁨이 거기에도 있으며 우리의 영혼이 슬픔과 분노의 껍질에서 해방되어 새 출발할 수 있는 희망의 불빛도 분명 거기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은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함께 바라보던 저 숲속의 잎들이 지금 조용히 지고 있습니다. 어제 사랑하고 오늘 낙엽지는 자리에 내일 다시 바람이 불면 서로 헤어지고 그리워하던 우리의 방황이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은총의 씨앗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넉넉한 가을비와 함께 찾아온 올 추석 명절, 많이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