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id": "xe-42851",
  "title": "20130908m 기도의 계절(마 14:22-33)",
  "authors": [],
  "category": "sermon",
  "dates": {
    "registered_at": "2013-09-09T20:49:54",
    "original_updated_at": "2013-09-09T20:49:54",
    "published_on": null,
    "delivered_on": null
  },
  "tags": []
}
---
<!-- paragraph:p0001 -->
<p class="p1">20130908m</p>
<!-- paragraph:p0002 -->
<p class="p1">마 14:22-33</p>
<!-- paragraph:p0003 -->
<p class="p1">기도의 계절</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p>
<!--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창세기 2장을 보면, 하나님이 처음에는 남자만 지으셨습니다. 아무래도 아담이 혼자 사는 게 좋지 않아 보여서 하와를 지어 짝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함께 살기 이전에 홀로 살았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담의 갈빗뼈로 하와를 만드셨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각각 유혹을 받았고, 각각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남자는 여자 때문이라고 했고, 여자는 뱀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각 그들에게 선고하십니다. 남자에게는 땀을 흘려야 된다고 했고, 여자는 출산의 벌을 내립니다. 인간 기원을 얘기하는 창세기가 한 몸인 듯 하지만 실은 둘이고,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사는듯 하지만 실은 홀로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내 인생을 대신 살 수도 없고, 부모가 자식 대신 어떻게 할 수가 없스빈다. 다 내 몫의 운명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다 홀로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적 고독이요 존재론적 외로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자기를 가리고 감추었다는 것은 남에게 자기를 공개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고독성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두 가지 근원적인 욕망이 있습니다. 하나는 고독을 피하는 겁니다. 어떻게든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 반면에 사람에게는 혼자가 되고 싶어하는 정서도 있습니다. 혼자 살 던 때의 그리움입니다. </p>
<!-- paragraph:p0008 -->
<p class="p2"><br></p>
<!-- paragraph:p0009 -->
<p class="p1">사실 인간은 외롭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주님도 외로웠습니다.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렸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고,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해가 지자 주님은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 건너편으로 보냅니다. 22절입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이어지는 23절을 보십시오. 주님은 홀로 산으로 가십니다. 제자들은 배에 태워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들은 집으로 돌려 보내시고, 당신은 산으로 가십니다. 복음서에는 이런 대목이 꽤 있습니다. 마가복음, 요한복음에도 나옵니다. 주님이 왜 이렇게 자주 홀로 나가셨을까요? 주님은 기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기도하기 위해 홀로 계셨습니다. 주님은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홀로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홀로 있음, 고독과 기도는 어떤 관계일까요?</p>
<!-- paragraph:p0010 -->
<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기도는 나홀로 주님과 마주 서는 일입니다. 나 홀로 주님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그게 기도입니다. 나의 가장 진실한 모습, 적나라한 모습을 주님 앞에 그대로 드러내는 시간입니다. 키엘케골의 말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고독한 단독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가장 적나라한 실상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게 기도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체 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중인격자, 삼중인격자, 다중인격자, 분칠에 덧칠을 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배제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나만의 골방에 들어가 벌거벗는 행위입니다. 기도의 계절인 가을에 홀로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다. 세상살이하는 동안은 사람들 만나느라 주님 만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겁니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기도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세상 때에 절어 못 느껴서 그렇지 기도할 때는 정말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있는 겁니다. 주님이 진지하게 내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그래서 기도가 가장 복된 시간입니다.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교감할 때 우리는 행복해 합니다. 그게 바로 기도의 시간입니다. 주님도 그렇게 하나님을 뵙고 대화하려고 자주 산으로 들로 강으로 홀로 나가신 것입니다. </p>
<!-- paragraph:p0012 -->
<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기도할 때 정직하게 자신을 만나고 적나라한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뵐 뿐 아니라 가장 순수한 인간 본연의 심성으로 이웃을 만납니다. 우리는 평소에는 자기 살기 바쁩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는 다릅니다. 기도할 때 이웃의 비명소리를 듣습니다. 기도는 나만의 독백이나 주문이 아닙니다. 주님은 주님과의 대화입니다. 외롭게 풍랑을 만나 고투하는 이웃의 비명을 듣습니다. 영성이 투명하면 이웃의 비명이 들립니다. 세상살이에 분주할 때는 하나님의 음성도 이웃의 비명도 들리지 않습니다. 내 자신에 몰입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의 음성뿐 아니라 지금 저 밤바다에서 낭패 만나 고통하는 이웃의 신음도 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힘든 이웃들 많습니다. 풍랑 만난 이웃들의 무수한 비명과 신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들의 비명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아서입니다. 기도 부족 때문입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산에서 기도할 때 제자들의 당황하며 지르는 소리를 다 들으셨습니다. 산에서 기도하고 계신 중인데도 바다 한가운데서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계셨고 비명도 들으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작은 한숨을 다 듣고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누군가 널 위해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주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웃의 비명과 신음소리를 듣게 되고 결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이웃사랑은 기도할 때만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실 때 주님처럼 하나님의 음성뿐 아니라 풍랑 만나 제자들의 비명소리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p>
<!-- paragraph:p0014 -->
<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그리고 우리도 기도할 때 주님처럼 풍랑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25절 이하를 보십시오.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제자들은 지금 밤새 풍랑으로 인해 고생하는데, 주님은 그 풍랑 위를 걸으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주님처럼 세상 풍파 위를 딛고 설 수 있습니다. 28절 이하입니다.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베드로도 주님처럼 물 위를 걸었습니다. 비록 걷다가 빠지기는 했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확인되었습니다. 기도하면 얼마든지 주님처럼 바다 위를 걸을 수도 풍랑을 딛고 설 수 있습니다. 어둔 밤바다 위에서 풍랑으로 고통당하며 신음하는 분이 계십니까? 베드로처럼 나를 명하사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오라는 주님의 응답을 들으실 겁니다. 풍랑을 딛고 바다 위를 걸어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시길 빕니다. </p>
<!-- paragraph:p0016 -->
<p class="p1"><br></p>
<!-- paragraph:p0017 -->
<p class="p1"><br></p>
<!-- paragraph:p0018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4nd_Pan2gfE"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