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노랑색 그리스도(Yellow Christ)

하늘 빛이 한층 푸르고 높아졌습니다. 땅의 열기도 많이 식었고, 바람의 숨결에서도 어느 새 서늘한 기운이 묻어나는 가을의 초입, 반 고흐의 노오란 <해바라기>를 닮은 폴 고갱의 <노랑색 그리스도>를 보고 왔습니다. 이미 지난 6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이달 말까지 계속되는 서울시립미술관의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전. 고갱의 회고전으로는 이번이 처음이고, 작품 수도 총 60여 점에 불과해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림들이 다 전시되어 마치 폴 고갱의 정수만을 엄선한 컬렉션 같았습니다. 작가 서머싯 모옴(W. Somerset Maugham)은 고갱의 생애를 소재로 <달과 6펜스> 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 속의 고갱은 오직 그림 하나만을 위해 처자식과 잘 나가던 직업까지도 다 버리고 무작정 파리로 가는데 실제 그는 그랬습니다.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파리에서 태어나 11세의 어린 나이로 성직자의 꿈을 키우기 위해 소신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러나 6년 만에 그 꿈을 접고 다시 세상으로 나와 견습선원 생활을 거쳐 증권거래점 직원이 되어 경제적인 여유를 누리게 됐고 이 때 만난 덴마크 여성 메트 소피가드와 결혼하여 다섯 명의 자녀까지 둡니다. 그러나 그의 정서 안에 잠재되어 있던 그림에 대한 집념은 결국 그로 하여금 그 모든 것을 떠나게 하였습니다. 35세라는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격 그림에 투신하면서 당장 생활도 어려워지고 가족들과의 관계도 급속히 나빠졌습니다. 마침내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인 덴마크로 떠나버렸고, 그는 홀로 유럽 여러 곳을 방랑하다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 바로 남태평양 타히티섬. 거기서 그는 소위 원시주의(Primitivism) 화법을 실험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기다 1903년 5월 53세를 일기로 쓸쓸히 생을 마감합니다. 


흔히 그의 3대 걸작 중 제일 먼저 꼽히며 이번 전시회에서도 선보인 <설교 후의 환상>(1888)은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얍복 강가의 씨름을 소재로 그린 작품으로 고갱 특유의 현실과 상상의 종합적인 표현이 잘 어우러진 수작입니다. 다음은 역시 3대 걸작 중 하나인 <노랑색 그리스도>. 이 그림은 고갱의 적지 않은 성서화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프랑스의 브리탸뉴 지방의 퐁타방에서 1889년 가을에 그린 것입니다. 특히 이 그림은 고갱이 인상주의에서 그만의 독창적인 종합주의로 넘어가는 시기에 그린 작품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들을 빛의 변화에 따라 각각 달리 포착해내는 인상주의를 벗어나 자신의 상상력과 관념들을 현실과 결합시켜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이를테면 고갱이 주장한 종합주의였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십자가에 달리신 노랑색의 주님과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여인들, 그리고 십자가의 뒷 배경을 이루고 있는 짙은 노랑색의 자연이 다 각각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유럽 문명에 대한 깊은 회의를 품고 언제나 원시적인 건강함과 종교적 경건함, 소박함에 관심이 많았던 폴 고갱. 그는 이 그림에서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백인이 아닌 동양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초자연, 영혼과 육신, 영성과 인간성,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서양적인 이분법적 사고체계를 과감히 깨고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라는 통전적인 사고, 일원론적 세계관이 바로 그가 추구한 종합주의(Synthetism)의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작가는 이 그림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예언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고갱의 그림은 반 고흐의 그림과도 무척 닮아 있습니다. 잠시나마 함께 했던 그들이 서로 싸우고 결별했는가 하면 그 일로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기까지 하지만 실은 고갱의 그림도 고흐 못지않은 광기로 가득 차 있으며 꿈틀거리는 붓 터치와 강렬한 원색의 조합에서 언제나 고흐적인 정렬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의 3대 걸작의 하이라이트이자 이번 전시회의 백미는 역시 그의 최후 작품이면서 가로와 세로가 무려 4m나 되는 대작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유언을 대신해 그린 그의 이 작품은 소장기관인 미국 보스턴 미술관이 이번을 포함해 지난 50년간 딱 세 차례만 해외 전시를 허용할 만큼 반출을 극히 제한하는 그림이어서 국내에서는 두 번 다시 접하기가 쉽지 않을 작품입니다. 아무튼 고갱의 <노랑색 그리스도>처럼 이 가을에 잘 어울리고, <설교 후의 환상>처럼 이 기도의 계절에 딱 맞고,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처럼 이 사색의 게절에 제격인 그림도 없을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