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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1m 무화과의 계절(눅 13:6-9)

20130901m

눅 13:6-9

무화과의 계절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우리가 읽는 성경은 신구약 합하여 66권입니다. 이 66권은 주후 397년에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모인 회의에서 정경으로 공인되었습니다. 이 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이 어거스틴입니다. 구약성경 39권은 유대교에서도 정경으로 인정한 것을 그대로 받아 공인했습니다. 문제는 27권 신약성경이 문제였습니다. 이것이 정경화되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신약성경은 기독교의 산물입니다. 이것을 최종적으로 정경으로 채택하기 전에는 여러 문서들이 많았습니다. 복음서도 지금은 4권이지만, 정경화 전에는 도마복음, 유다복음, 맛디아복음, 12사도의 복음, 바실리데스복음서, 야고보의 원복음서 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397년에 정리된 것입니다. 왜 4권 이외에 다른 것들은 정경으로 채택되지 않았을까요?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영감이 떨어지거나, 사도들의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지 못했거나, 조작의 흔적이 역력하면 배제되었습니다. 물론 이단들이 생성한 복음서들도 색출해서 제외시켰습니다. 


그런데 외경 가운데 맛디아복음에도 오늘 본문과 비슷한 얘기가 나옵니다. 거기 내용은 물가에 서 있으면서도 전혀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주인이 베려하자, 나무가 말하길, 주인님 저를 옮겨 심어주시고 그래도 만약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때 찍어버리라고 하자, 주인이 물가에 심었는데도 네가 열매를 못 맺는데 옮겨 심는다고 열매를 맺겠느냐며 당장 찍어버렸다고 합니다. 


이 비유의 무대는 포도원입니다. 그런데 얘기는 포도나무 얘기가 아니라 무화과나무입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가 궁합이 잘 맞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는 땅의 자양분을 굉장히 잘 빨아들이기에 촘촘히 심으면 안 되고 드문드문 심어야 한다고 합니다. 주인이 오늘 본문에서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려고 하느냐고 한 데는 무화과나무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유대인들에게는 각별합니다. 포도와 무화과는 유대인의 전통 과일입니다. 무화과는 에덴동산에도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 서로 벗은 몸이 부끄러워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치마를 해 입었다고 합니다.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인류 복식문화의 원초입니다. 유대인에게는 무화가가 단순 과일 이상입니다. 포도주가 술이나 음료 이상으로 유대인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심지어는 주님의 보혈을 상징하듯이, 무화과는 항상 이스라엘의 상징이었습니다. 주님의 비유도 이런 유대인의 전통적 관념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로 비유된 이스라엘, 곧 우리 믿는 자들입니다. 


지금 한창 무화과 철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보다 수확이 좀 더 빠르다고 합니다. 우리는 8월 중순부터 11월 말이라면, 이스라엘은 6월부터 9월입니다. 8월과 9월은 이스라엘과 우리나라가 무화과 철로 중첩됩니다. 무화과는 심은 지 3년 만에 수확한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무화과는 심은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주인이 인내심을 가지고 3년을 더 기다립니다. 그러나 매년 허탕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화가 난 겁니다. 포도나무나 무화과는 열매 외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목재나 관상용으로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는 꽃이 없습니다. 그래서 꽃을 볼 일도 없습니다. 열매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7절을 보면, 주인이 드디어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포도원 지기에게 명하기를, 내가 3년을 봐도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고 합니다. 과수원에서는 열매 없는 나무는 채산이 맞지 않아 벱니다. 이것이 상식입니다. 포도원 주인도 그렇게 하라고 명령한 겁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무화과나무와 주인 사이에 포도원 지기가 끼어듭니다. 포도원 지기는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냥 두십시오. 내가 거름을 줄테니 내년에도 열매가 없다면 찍어버리라고 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 말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심판이 유예됩니다. 이 점이 맛디아복음과 다른 부분입니다. 397년에 카르타고 회의에서 맛디아복음이 배제되고 누가복음이 채택된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한 일입니까? 누가복음에는 중보자인 포도원 지기의 탄원을 주인이 용납합니다. 그래서 더 참습니다. 맛디아복음보다는 누가복음이 하나님의 뜻을 더 정확히 전달하는 복음서라는 겁니다. 이것이 더욱 하나님의 심정을 더 잘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 참으시고 심판을 유예하는 관대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무화과나무에는 거름을 주는 법이 없습니다.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유대인이 무화과나무를 기르며 거름을 주었다는 얘기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본문의 주인이 거름을 주는 것까지도 허용했다는 것은 수지타산을 초월해서 무한한 관용을 베풀었다는 증거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포도원 지기는 중보자 주님이십니다. 포도원 주인은 중보자 포도원 지기의 탄원에 약하십니다. 하나님이 추상같은 명령을 하시다가도 주님이 한 해만 더 참으라고 하면 거절하지 못하십니다. 그런 주님이 우리의 중보자이시라는 게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까? 주님은 항상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우리를 변호하고 탄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주님의 부탁을 들어주십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열매는커녕 주인에게 실망만 주는 무화과나무 앞에서 주인에게 한 해만 말미를 달라고 탄원하는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여기에 나오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3년을 기다리고 그로부터 3년을 더 기다려 준 그 무화과나무는 누구입니까? 주님 당시로는 이스라엘이고, 지금은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중보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절절하게 하나님, 제발 참으십시오, 진노를 진정하십시오, 한 해만 참으라고 탄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살아있는 것입니다. 


올해는 더는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지 맙시다. 예루살렘 가두에 열매 없던 무화과나무 기억하시지요? 잎사귀만 무성했던 그 무화과나무 말입니다. 겉모습은 그럴 듯 했습니다. 잎사귀만 무성해서 시장하신 주님을 좌절시킨 무화과나무는 결국 저주 받아 뿌리 채 말라버렸습니다. 1년만 더 참아달라고 탄원하는데 그 1년이 실제 얼마의 기간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 긴 기간은 아닐 것입니다. 모두 정신을 차리고 위기의식을 가집시다. 올해라도 우리가 열매를 맺으면 심판은 철회됩니다. 우리는 한 번 더 심판을 유예 받은 은혜의 기간을 살고 있습니다.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올해는 열매를 맺어 주인과 포도원 지기의 기대에 부응합시다. 풍성한 사랑의 열매, 기도의 열매, 전도의 열매를 맺읍시다. 올해도 잎사귀만 무성하여 주님을 속일 수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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