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30818m 은혜의 강가에서(겔 47:1-12)

 

 

20130818m

겔 47:1-12

은혜의 강가에서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이미 피서를 다녀오신 가정도 있고, 금주에 떠날 가정도 있을 겁니다. 우리에게는 동해나 서해, 제주도보다는 은혜의 강에서 헤엄치는 게 중요합니다. 워터파크보다 은혜의 강가에서 수영하는 일이 훨씬 더 복됩니다. 은혜의 강에서 헤엄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본문을 통해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본문은 에스겔이 본 환상입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샘물이 솟아서 그게 제단을 돌아 성전 밖으로 흐르더니 드디어는 큰 강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전을 통해 흘러내립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지성소가 있고, 예배와 기도, 찬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의 강이 성전 문지방에서 시작된다는 말은 당연합니다. 12절을 보면,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고 합니다. 은혜의 강의 발원지가 성소라는 겁니다. 요즘말로는 교회라는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지시로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와 강을 이룬 강물에 들어가 봤습니다. 처음에는 그 물이 발목까지 찼다고 합니다. 3절 하반절입니다.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우리가 같은 교회, 같은 조건에서 신앙생활을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성도가 다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향유하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가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정도가 다릅니다. 은혜의 강물이 발목까지 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누리는 하나님 은혜의 수위입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흔히 발목 신자라고 합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신앙생활을 오직 발목으로만 하는 사람입니다. 발목만 사용해 교회만 드나드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은 지 5년,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발목이면 어떻게 합니까? 이런 사람은 툭하면 발목을 삐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그저 칭찬만 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싫은 소리를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절대 발목 신자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더 깊은 데로 나아가십시오.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어떻게 발목 수준으로만 누리며 삽니까?

 

에스겔이 또 다시 강물에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물이 무릎까지 올랐다고 합니다(4절). 이런 사람은 무릎 신자입니다. 발목 신자와는 달리 자기 스스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신자를 가리킵니다. 신자는 원래 다 무릎 신자입니다. 주님의 육신의 형제 가운데 야고보라는 동생이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저자입니다. 베드로와 함께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가장 유력한 지도자였습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의 별명이 낙타무릎이었습니다. 밤낮으로 무릎 꿇고 기도해서 무릎이 낙타무릎처럼 되었다는 겁니다. 스스로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문제가 있습니다. 무릎 수위에도 못 미치는 신자는 자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무릎 꿇고 기도할 줄 아는 수준의 신자라고 해서 다 된 것은 아닙니다.

 

4절 하반절을 보니 물이 허리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허리 신자입니다. 허리 신자는 무릎 꿇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허리 굽혀 헌신과 봉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종은 허리로 삽니다. 발목만 써서 교회만 오가던 사람이 언제부턴가 스스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더니 이제는 허리를 굽힙니다.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입니다. 교회의 사역자, 직분자는 이를테면 허리 신자요, 허리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직분자가 가장 못하는 일이 허리를 안 쓴다는 겁니다. 허리를 굽힐 줄 모릅니다. 직분자가 제일 어려워하는 일이 남 섬기는 일입니다. 평소에는 괜찮던 사람도 임직만 하면 갑자기 다들 디스크 환자가 됩니다. 주님도 친히 허리를 굽히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너희도 이렇게 남을 섬기라 하셨지만, 우리는 이게 잘 안 됩니다. 허리를 굽히십시오. 진정한 이 시대의 허리 신자가 되십시오. 백화점 직원들도 매장을 오픈하기 전에 허리 굽혀 인사하는 연습을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허리 신자가 많아야 교회가 부흥 발전합니다. 허리를 굽힐 줄 모르는 사람은 목도 뻣뻣합니다.

 

그럼에도 허리 수위마저도 다는 아닙니다. 5절을 보면 물이 가득해서 헤엄칠만한 물이라고 합니다. 강물의 수위가 더 높아져 걸어서는 안 되고 헤엄쳐야 한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은혜 충만의 경지입니다. 은혜의 강을 마음껏 헤엄치는 수준이야말로 주님이 기대하시는 은혜의 최종 수위입니다. 우리는 절대 발목, 무릎, 허리 수준으로 만족할 수 없고 은혜 충만해야 합니다. 헤엄치는 수준으로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9절입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그리고 12절입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은혜의 강물에 헤엄치는 사람들에게 보장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의 강을 헤엄쳐야 누릴 수 있는 복은 번성, 넉넉함, 다양함, 풍요로움, 치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 충만,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결코 발목, 무릎, 허리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은혜의 강에서 헤엄쳐 보십시오. 부족함이 없습니다. 물고기가 번성하고, 각종 실과나무의 열매가 끊이지 않고, 그 잎사귀가 약 재료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은혜의 강에서 헤엄쳐야 합니다. 은혜와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얕은 물에서 첨벙거리지 마시고 깊은 물에서 헤엄치십시오. 주님이 약속하신 이 풍성한 복으로 인해 더욱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