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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30804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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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마 24:3-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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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미혹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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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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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요즘은 신앙인조차도 말세나 종말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습니다. 이제는 타성에 젖고 내성이 생겨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시한부 종말론자들도 한 몫 했습니다. 그동안 주님 재림 예언이 다 불발로 끝났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종말에 관한 얘기를 해봐야 꿈쩍하지 않습니다. 종말불감증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종말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열광적 종말론자가 되는 것도 위험하지만, 너무 무심해 아무 관심이 없는 것도 잘못된 겁니다. 신앙적으로는 무책임한 것입니다. 지금은 무엇으로 보나 그야말로 말세지말입니다. 종말 중에서도 종말입니다. 신앙적 종말의식을 재고하십시오. 종말에 대한 영적 감각을 새롭게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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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종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무엇보다 주님이 언제 오시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주님은 사도행전 1장 7절에서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기에 너희 알 바 아니라’ 고 하셨습니다. 종말이 언제 오실 것인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비밀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6절을 보면 더욱 극단합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천사는 모른다고 하더라도 설마 아들까지 모르시기야 하겠습니까만, 그럼에도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구체적인 재림의 시점은 철저한 보안사항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끊임없이 몇 년도에 주님이 재림한다며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들은 툭하면, 날과 때를 모른다고 했지 년도를 모른다고 했느냐 라고 합니다. 바울도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에서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자기도 아는 바 없다’ 라고 했습니다. 때와 시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깨고 해산의 고통처럼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에서는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한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37절에서는 노아의 때처럼 임한다고 했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졸지에 세상 종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재림과 세상 종말이 왜 이렇게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고, 특별 보안사항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입니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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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우리를 깨어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언제 오셔도 떳떳이 맞을 수 있도록 늘 준비된 자세로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문단속을 잘 하는 것은 밤손님이 언제 올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마찬가집니다. 주님은 우리가 모든 긴장을 다 풀고 안일하게 살기를 원하시지 않고 늘 깨어 근신하며 필요한 만큼 긴장하며 살기를 원하시기에 그 날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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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러면 종말에 관한 한 모든 것이 비밀에 부쳐져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때와 시기는 일급비밀입니다만, 징조는 사전에 감을 잡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본문 3절을 보면 제자들이 주님께 나와 물었습니다. 세상 끝의 징조를 묻습니다. 4절 이하를 보면 주님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합니다. 종말에는 너도 나도 나서서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하며 미혹하며, 난리의 소문, 지진, 재난 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32-33절을 보십시오.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세상 종말이 임박했다는 것입니다. 날과 시는 모르지만, 예민한 영적 감수성으로 시대의 기상도는 구별하여 긴장하여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48절 이하를 보십시오.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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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우리에게 허용된 종말의 징조 가운데서 주님이 가장 많이 강조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본문 4절과 5절에서 말씀하신 ‘내가 그리스도라 하며 미혹하는 사람들이 많이 출현한다’고 합니다. 11절을 보면 ‘거짓 선지자가 일어나 미혹하며’, 15절을 보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 라고 합니다. 23-24절도 보십시오.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6절도 보십시오.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주님이 가장 많이 말씀하신 것은 역시 &lt;적 그리스도&gt;입니다. 왜 종말에 적 그리스도들이 극성입니까? 왜 거짓 선지자들이 출현할까요? 사탄이 마지막 발악을 해서 그렇습니다. 모든 자원을 다 동원해 집중적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여러 종말의 징조가 나타나겠으나 적 그리스도의 출현은 종말 말기현상입니다. 15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이것은 구약 다니엘서 9장 이하에 나오는 사건을 주님이 인용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서의 그 말씀은 주전 167년 수리아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희랍의 최대 신인 제우스 신상을 세워 경배하게 했던 사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이런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현상을 보면 그때가 곧 말세지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약 100개의 이단이 있고, 신봉자는 100여 만이라고 합니다. 자생적으로 생긴 이단 50여개 가운데서 40개 이상이 지난 1990년대 이후에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이단들은 거의 신흥종교입니다. 귀 있는 자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비상한 단계에 돌입했다는 것입니다. 위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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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이렇게 긴박한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런 말세적 현상에 대처하며 살아야 합니까? 주님의 당부는 이것입니다. 우선, 유대에 있는 자들을 산으로 도망하라고 합니다(16절). 유대 지방의 유일한 산은 시온 산입니다. 그 꼭대기에 예루살렘 성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안에 성전이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시온 산으로 도망해야 합니다. 환난 때는 성전으로 피해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교회중심의 생활을 보다 철저히 하라는 것입니다. 종말이 임박할수록 더욱 교회를 구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도망해야 할 구원의 방주는 교회입니다. 괜히 성산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전으로 교회로 도피하셔야 합니다. 아무리 좁고 갑갑하고 냄새 나고 시끄러워도 교회가 최후의 방주요 도피성입니다. 세상은 결코 그 어디에서도 이런 데가 없습니다. 시온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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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다음은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아야 합니다(17절).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기도했는데, 그 때마다 다 성전에 갈 수가 없기에 지붕 위에 올라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따라서 17절의 말씀은 종말 말기에는 더욱 기도생활에 정진하라는 것입니다. 집안 물건보자 지붕 위 기도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기도처를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처를 떠나고 기도생활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집안 물건 때문입니다. 소유, 물질, 재산 때문입니다. 거기에 시간과 맘을 뺏겨 기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상한 말세지말(末世之末)입니다. 종말 말기에는 기도가 소유보다 재산보다 더 중요합니다. 집안 물건이 아니라 지붕, 곧 기도를 중심으로 사십시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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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마지막으로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돌아보지 말라고 합니다(18절). 내게 주어진 사명, 달란트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그 어떤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라는 것은 주님이 가까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쟁기 잡은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세상 종말이 코앞에 닥친 때입니다. 유대인에게는 겉옷이 이불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겉옷이지만 마지막 때는 그런 데 미련을 갖지 말라고 합니다. 결산이 박두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구원성인 소알성만을 바라보고 뛰라고 했는데 뒤돌아보다 영원히 소금기둥이 된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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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주님이 친히 일러주신 이 마지막 비상한 시대의 삶의 방식과 지혜가 오늘 우리에게 깨달음과 도전이 되며, 이단들에 대한 경계의 메시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