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28m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전 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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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8m
전 1:12-18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오늘 칼럼란에는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소개했습니다만 지난 1999년 작고한 <빙점>, <길은 여기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 여사 잘 아시지요? 그녀는 24살부터 37살까지 폐결핵으로 요양소에서 살았고, 그 이후에는 직장암으로 생사를 넘나들었고, 1999년 7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파킨슨 병으로 병상에 있던 분입니다. 평생 병을 달고 살았던 데다가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예민하다 못해 비관론자요 자살예찬론자였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돌아갈 때 작은 성경을 두고 갔는데, 그걸 펼쳐 보다가 전도서를 만납니다. 1장 2절을 읽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절망보다 더 지독한 허무의 노래가 있을 줄 몰랐던 겁니다. 그때부터 성경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세례를 받고 기독교에 입문했습니다. 간증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해서 가장 가슴 따뜻한 작가로 거듭났습니다. 그녀는 “나는 이제 가장 행복한 죽음을 맞습니다” 하고 소천했습니다.
여러분, 전도서는 해 아래 더는 새 것이 없고 모든 게 다 헛될 뿐이라고 합니다. 14절 하반절입니다.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인생살이가 다 바람 잡는 짓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어느 시대나 모든 인생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 몇 가지를 예로 들면서 그런 것들의 허무함을 신랄하게 고발합니다.
우선 지성주의입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솔로몬입니다. 지성의 화신인 솔로몬이 제일 먼저 고발한 게 지성주의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문화 자체가 지성을 최고로 삼습니다. 유교문화 때문일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합덕을 최고의 경지로 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면 가난해도, 심지어는 첩을 두어도 존경했습니다. 군자는 지식을 추구하는 엘리트를 가리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지성주의가 최고의 덕목으로 꼽힙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공부 못하면 사람도 아니고, 대학 못 가면 죽는 줄 압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박사학위 취득이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100명이 박사학위에 도전하면 75명이 성공한다는 수치입니다. 외국 사람들은 공부를 해도 꼭 학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학위는 자기가 연구한 전문분야에서 자연스레 얻게 되는 결과물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해외 유학을 가면 반드시 학위를 따야합니다. 학위를 따면 인생에 실패하는 겁니다. 돌아오지도 못합니다. 일단 학위를 시작하면 끝을 봐야하기에 거의 실패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도서의 저자 솔로몬은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습니다. 유사 이래 전무후무한 지성인이었습니다. 내노라는 석학과 현자들이 세계 도처에서 가르침을 받겠다며 예루살렘으로 찾아왔습니다. 솔로몬은 자타공인한 지혜의 화신이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이것은 주지주의를 무색케 하는 적나라한 인생 고백입니다. 우리는 흔히 박사는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식이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식에 대한 맹신을 통렬히 비판하는 말씀입니다. 지식주의에 대한 허무주의 선언입니다. 고도의 지식, 첨단 정보도 구부러진 인간성을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여기에 나오는 미친 것, 미련한 것은 지식에 대한 원색적 비판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이것이야말로 정말 초 치는 소리입니다. 우리야말로 뼈 빠지게 벌어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입니까?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다,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도 더한다고 합니다.
정열을 바쳐 하는 공부가 보람이 있으려면, 바람 잡는 짓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절대 지식만으로는 안 되고 거기에 반드시 플러스 알파가 필요합니다. 구약의 욥기, 잠언, 전도서의 주제인 “여호와 경외”입니다. 정말 지식이 값지려면 그 저변에 여호와 경외가 깔려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그것 없이는 어떤 지식도 공중누각입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힘쓰고 애써서 하는 지성의 추구가 내게 복이 되려면 그 저변에 여호와 경외가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서는 절대 지식 무용론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반지성주의를 강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지식과 지성이 참되려면, 여호와 경외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혜가 번뇌가 되고, 지식이 근심이 된다는 겁니다.
다음은 쾌락주의, 향락주의, 신비주의입니다. 이것은 전도서 2장 1-1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쾌락주의는 쾌락이나 향락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고 내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려는 삶의 철학입니다. 사실 어느 시대나 많은 사람이 추구하고 보편적인 삶의 철학이 쾌락주의입니다. 한마디로 잘 먹고 잘 살자는 겁니다. 멋지게 벌어 인생을 즐기며 살자는 겁니다. 로마가 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로마제국의 흥망사라는 책을 보면 군사력이나 경제력 약화, 외부의 적 때문에 망한 게 아니라, 내부의 적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삶의 철학이었던 에피큐리즘(쾌락주의) 때문입니다. 그들은 각국에서 약탈해온 온갖 부로 상상할 수 없는 향락을 추구하다 스스로 무너진 겁니다. 로마의 귀족들은 온갖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먹다가 배부르면 식탁 아래 준비해둔 요강에 게워내고 다시 먹었습니다. 개인이나 나라나 절대 가난 때문에 망하는 법은 없습니다. 가난하면 행복합니다. 항상 부 때문입니다. 쾌락, 향락 때문입니다. 로마, 폼페이,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습니다. 전도서 2장 3절은 술로 인생을 즐기려는 자들의 헛됨을 꼬집고, 4절은 사업을 크게 벌이고 집을 크게 짓고 종들을 부리며 인생을 즐기려는 자들의 부질 없음을 고발합니다. 8절을 보면 가무와 첩 얘기를 합니다. 솔로몬은 적어도 1000명 이상의 첩을 거느렸고 심지어는 외국에서 미녀를 수입했습니다. 실제로 그게 솔로몬의 말년을 괴롭힙니다. 미녀들이 자신들의 우상까지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주색잡기도 그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쾌락주의는 얼핏 보면 굉장히 화려한 것 같고 행복한 것 같으나 그 내면에는 견딜 수 없는 공허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2장 10절입니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그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부와 조건을 누린 자입니다. 그런데 11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다 공허한 짓이라는 겁니다. 향락주의자들이 반드시 귀 담아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인생은 향락이 목표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행복이 아니라 허무입니다. 그럼에도 말세에는 향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고 합니다. 요즘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이나 대중문화를 보십시오. 그야말로 쾌락중심의 향락문화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장로교 요리문답 제1조는 ‘인생 제일의 목적이 하나님 영화롭게 하기’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최선의 목표여야 합니다.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은 향락주의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이런 철학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솔로몬의 가르침입니다.
다음은 물질주의입니다. 전도서 2장 18-26절까지의 주제입니다. 맹목적 지성주의나 쾌락주의도 문제지만, 물신주의(맘몬니즘, 배금주의)도 행복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으나 점점 타락해 나중에는 온갖 미친 짓을 하다가 죽습니다. 솔직히 가난해서 먹고 살기 바쁘면 죄 지을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돈 많고 시간이 많으면 정말 죄 지을 일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죄를 많이 짓나 봅니다. 사람 하나 망하게 하려면, 돈 주고 시간 주고 건강 주면 백발백중입니다. 오래 가지도 않습니다. 석 달이나 길어봐야 1년 이면 망합니다. 어느 나라나 로또 1등 당첨자들을 보십시오. 잘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차라리 가난할 때는 건강하고 행복했는데, 로또에 당첨되어 돈벼락을 맞은 후에는 가정도 깨지고 친구도 잃고 건강도 잃어 전보다 훨씬 더 불행해졌습니다. 돈의 생리는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돈을 법니다. 그때는 보람도 있고 기쁨도 있습니다. 다음에는 돈이 돈을 법니다. 이때부터가 문제입니다. 돈 버는 재미에 빠져 돈에 홀리기 시작하다 돈이 사람을 잡습니다. 돈의 결말은 항상 불행입니다. 가룟 유다도 돈 때문에 망했습니다. 돈을 믿지 마십시오. 부가 나를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면 지식도 쾌락도 돈도 아니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행복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행복을 보장합니까? 솔로몬은 하나님 절대주의를 말합니다(모노 야훼이즘). 하나님 제일주의입니다. 이게 유일한 대안이고 우리의 절대적 삶의 가치요 길이라고 솔로몬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지성도 쾌락도 돈도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우선주의가 전제될 때, 모노 야훼이즘이 내 삶의 실천 강령이 될 때, 우리 인생은 보람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지성만을 좇고 쾌락과 향락, 돈만을 좇을 지라도,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절대주의를 여러분 삶에 관철하십시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이 아름다워집니다. 더는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절대주의, 하나님 제일주의로 여러분 삶이 건강하고 밝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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