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10501m: 회복(요 21:3-17)

2011년 5월 1일 주일낮예배/어린이주일
본문: 요 21:3-17
제목: 회복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본문 3절을 다시 봅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이게 무슨 얘기입니까? 베드로를 위시한 몇몇 제자들이 갈릴리로 낙향해서 그들의 옛 직업인 어부로 되돌아갔다는 겁니다. 이게 이해되십니까? 이때는 이미 부활하신 주님을 예루살렘에서 최소 두 번은 뵈었습니다. 본문 앞장인 20장 19절이하입니다.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부활하신 주님과의 첫 번째 해후입니다. 20장 26절도 보십시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이게 부활하신 주님과의 두 번째 만남입니다. 

이렇게 두 번씩이나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는데 왜 제자들이 갈릴리로 돌아가 옛 직업을 택한 것입니까? 주님을 두 번씩이나 뵙기는 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그랬습니까? 주님에 대한 회의 때문에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주님에 대한 불신앙 때문이라기보다는 베드로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좌절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낙향한 겁니다. 베드로는 아직도 뼈아픈 실패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는 주님의 부활을 기뻐할 수도, 그 부활로 자신의 상처를 털어낼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일종의 우울증에 빠진 겁니다. 어지간히 큰소리를 쳤어야죠.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절대 주님을 안 버리겠습니다. 주님이 옥에 가면 옥에도 따라가고, 죽는 자리라도 함께 가겠다’고 장담했는데, 결국 달아났습니다. 일개 여종 앞에서 그것도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닭소리를 듣고 회개했다고 해도 그 상처가 그리 쉽게 아물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낙향한 겁니다. 내가 무슨 사도냐? 나 같은 인간은 갈릴리 촌구석에 틀어박혀 물고기나 낚다가 죽는 게 맞아 하면서 옛 직업으로 돌아온 겁니다. 막상 고향에 돌아와서 바다에 나가보니 어찌 된 노릇인지 고기잡이도 여의치 않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으나 허탕치고 새벽녘에 그물을 손질하는 중에 주님이 나타난 겁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그물을 다시 내리라고 하고 그대로 행했더니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여러분, 이 장면은 베드로가 처음 주님을 만날 때와 같습니다. 그때도 베드로는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며 부르셨습니다. 3년 전 바로 그 첫 사랑의 장소에서 주님이 다시 베드로를 만나주시는 겁니다. 처음 때와 똑 같은 상황을 연출하시며 베드로의 초심을 회복시키고 있는 겁니다. 

주님은 이미 뭍에서 숯불에 고기를 굽고 계셨습니다. 숯불에 언 몸을 녹이게 하고 먹을 것을 베푸신 후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왜 두 번이나 네 번이 아니고 세 번입니까?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 뜰 숯불 가에서 주님을 세 번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상처 받은 한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주님이 베푸시는 고도의 영적인 처방입니다. 세 번 부인에 세 번 사랑을 확인하시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주님은 사랑 말고 다른 것을 묻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왜 십자가에서 나를 버리고 달아났느냐? 왜 나를 따르겠다고 하더니 나를 버리고 부인하며 게다가 저주까지 했느냐? 왜 나를 예루살렘에서 두 번이나 만났는데도 낙향했느냐?고 묻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오직 사랑만 물으십니다. 왜냐면 첫사랑이 회복되어야 주님과의 원초적인 관계가 복원되기 때문입니다. 첫사랑이 회복되어야 상처가 아뭅니다. 처음 받은 사명도 회복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확인하시는 겁니다. 주님은 바로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의 능력, 우리의 재물이 아닙니다. 나에 대한 사랑이 여전한지, 첫사랑이 아직 그대로인지를 확인하기를 원하십니다. 왜 그런 죄를 지었느냐를 따지지 않으십니다. ‘네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느냐’를 물으십니다.

우리가 여기서 꼭 집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사랑을 세 번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거기에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하는 주님의 사랑과 베드로의 사랑이 다릅니다. 주님이 물을 때 사용한 사랑과 베드로가 대답할 때 언급한 사랑이 다릅니다. 원어는 다릅니다. 헬라말로는 사랑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아가페로 물으셨습니다. 아가페는 절대적인 사랑, 영원한 사랑,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아가페가 아니라 필레오로 대답했습니다. 필레오는 인간적이고 상대적인 사랑인데 우정과 같은 사랑입니다. 친구와의 사랑, 선택적인 사랑입니다. 지혜를 사랑한다(철학)를 뜻하는 필로소피, 음악을 사랑하는 것이 필하모니입니다. 이렇게 필레오로 베드로가 대답하는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 세 번째에 주님은 아가페가 아니라 베드로의 수준에 맞추어 필레오로 물으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힘을 얻습니다. 세 번째 대답에 베드로는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시며,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고 합니다. 전 같으면 베드로는 당연히 아가페로 대답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자기 주제파악을 한 겁니다. 자기 대답이 다 공허한 것임을 깨달은 겁니다. 주님은 아가페로 묻는데 베드로는 끝까지 필레오로 대답합니다. 아가페는 감당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필레오는 될 것 같다는 겁니다. 주님이 양보를 하신 겁니다. 베드로의 눈높이에 맞추신 겁니다. 자신 없는 사람에게 무리하게 강요할 수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주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사랑을 확인해 보십니다. 베드로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이 엄숙한 물음 앞에 서야 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든, 그동안 얼마나 자주 주님을 부인하고 주님으로부터 달아났든, 부활하사 오늘 다시 한 번 나를 찾아오신 주님께 아가페는 몰라도 적어도 필레오로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 이 사실을 주님이 아시지 않습니까? 하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면목이 없고 부끄럽지만 제가 주님을 필레오로 사랑합니다는 고백을 우리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안도감을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동안 내 모든 마음의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고, 첫사랑이 회복되며, 그래야만 사명과 소명이 복원되고 내 인생이 새로워집니다. 베드로도 제자도 이 사건을 계기로 예루살렘으로 복귀합니다. 그래서 다 불같은 생을 살다가 영예롭게 순교합니다. 베드로 같은 사람은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죽습니다. 송구스러워 주님처럼 반듯하게 십자가에 달릴 수 없다며 거꾸로 달려 죽습니다. 부디 첫사랑을 되찾고 초심을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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