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21n 젊은 자들아(벧전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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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1n
벧전 5:5-9
젊은 자들아!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올해도 우리 신앙생활의 최대 난적은 사탄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섬뜩한 표현입니다. 따라서 마귀의 존재나 사탄의 역사를 안이하게 생각하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는 마귀에게 허를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올 여름에도 마귀가 주로 어떤 사람을 노릴까요?
우선 교만한 자입니다. 5-6절입니다.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교만은 무서운 죄요 고색창연한 원초적 죄입니다. 천사도 사람도 다 교만 때문에 망했습니다. 이사야 14장 13절 이하를 보면 사탄의 근원이 나옵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천사장 루시퍼를 사탄, 그를 추종하는 디아볼로스를 마귀라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교만을 드러냅니다. 사탄이 뱀의 모습으로 나타나 ‘이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자, 하와가 ‘아하! 하나님이 이걸 막으려고 선악과를 못 먹게 했구나’ 하면서 따 먹습니다. 하나님은 믿었던 천사에게도, 사람에게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교만을 경계하시고 겸손을 으뜸가는 덕목으로 세우십니다. 주님은 겸손의 화신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근본 본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졌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교만한 자를 우선적으로 찾아가 자기의 하수인으로 삼습니다. 마귀가 가장 선호하는 자가 교만한 자입니다.
염려하는 사람입니다. 7절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내팽개치듯 다 위탁하라는 뜻입니다. 개역성경은 “맡겨 버리라”고 했습니다. 개역개정판의 번역이 좀 아쉽습니다. 원어는 <에피립산테스>인데 뉘앙스가 맡겨 버리라에 가깝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화려한 이력을 분토처럼 버린다고 할 때와 같은 표현입니다. 염려라는 말은 마음에 틈새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염려할 때 그 정서가 불안정하고 약해집니다. 그래서 마귀가 그 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마귀는 염려하는 자를 제멋대로 끌고 다니며 유린합니다. 염려하면 마귀에게 무장해제 당합니다.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염려는 내 존재와 삶의 주인이신 주님의 몫입니다. 염려는 내 몫이 아닙니다.
그리고 조는 자입니다. 8절 상반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많은 경우 우리는 졸다가 마귀에게 당합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의 권면인데, 그도 졸다가 아픈 실패를 맛본 사람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마지막 기도할 때 베드로는 졸다가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는 천추의 한을 남겼습니다. 베드로는 그런 쓰라린 과거가 있었기에 거의 외마디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아무리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설치고 다녀도 우리가 근신하면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주님이 무서워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졸면 어쩔 수 없습니다. 조는 사람은 마귀의 불로소득과 같습니다. 조는 사람은 마귀의 고성능 레이더에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저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는 그 수많은 물소떼에서 병든 녀석을 골라냅니다. 마귀도 마찬가집니다. 졸음은 무섭습니다. 운전할 때도 졸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의 졸음은 운전 중에 조는 것과 같습니다. 깨어야 합니다. 근신해야 합니다. 지금도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마귀의 밥이 되지 않으려면 두 눈을 부릅뜨고 살아야 합니다. 올해는 누구도 졸다가 허무하게 마귀의 밥이 되는 불행한 성도가 없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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