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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1m 빗속을 달리라(왕상 18: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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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1m

왕상 18:41-46

빗속을 달리라!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본문의 주인공인 엘리야는 전설적인 존재입니다. 그는 불의 선지자였습니다. 본문 앞부분인 37-38절을 보십시오.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엘리야는 기도로 하늘에서 불을 내린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두 인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2장에서 그 대목을 보면, 불말이 끄는 불수레를 타고 천국을 갔다고 합니다. 불의 선지자 맞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기도해서 하늘로부터 불을 내린 불의 선지자일 뿐 아니라, 기도해서 3년 반 동안이나 비오지 않던 땅에 큰 비를 내리게 한 선지자입니다. 본문 45절 이하를 보십시오. 엘리야가 쏟아지는 장대비 속을 미친 듯이 내달리고 있습니다. 마차를 타고 달리는 것과 두 발로 달리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빠르겠습니까? 마차가 이길 겁니다. 그런데 본문의 대결에서는 맨발로 빗속을 달린 엘리야가 마차를 타고 가는 아합보다 먼저 갔다고 합니다. 아합왕의 마차 앞에서 뛰었다고 합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갈멜산에서 이스르엘까지는 하프 마라톤 거리입니다. 엘리야가 왜 그렇게 뛰었습니까? 너무 기뻐서, 감격해서 그랬습니다. 무려 3년 반 동안이나 비 한 방울 오지 않던 대지에 자기가 기도해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3년 반 동안 비 오지 않으면 국가적 재난 상태일 겁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2800여년 전이라면 얼마나 극심했겠습니까? 또 비가 오니 그 감격이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엘리야처럼 이러한 감격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엘리야는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엘리야는 위대한 믿음의 선각일 뿐 아니라 기도의 달인이었습니다. 그런 엘리야의 기도의 두드러진 특색은 구체적인 기도입니다. 엘리야는 절대 모호하거나 추상적으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불을 내려주십시오. 비를 내려주십시오. 이 죽은 소년을 살려주십시오. 기름을 주십시오. 가루를 주십시오. 열왕기상을 한 번 보십시오. 엘리야의 기도를 보십시오. 항상 그렇게 똑똑 떨어집니다. 기도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시 쓰면 안 됩니다. 가사 전달이 확실해야 합니다. 괜히 민족을 달라거나 이 세계를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허세부리지 마십시오. 그렇게 기도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진솔하게 적나라하게 원색적으로 기도하십시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 사정을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지 나보다 먼저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은 주님은 그 모든 것을 그냥 주시지 않고 반드시 나로 하여금 그 모든 것을 기도하게 하신 후에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때그때 우리의 필요를 주님이 알아서 해주시지 않고 먼저 우리에게 불을 구하게 하신 다음에 불을 주시고, 비를 구하게 하신 다음에 비를 주시고, 돈을 구하게 하신 다음에 돈을 주십니다. 왜 그렇게 하신다구요? 만약 우리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알아서 주면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빛과 공기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원초적인 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의 복으로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당연하고 자명한 것으로 압니다. 우리의 기도 없이 하나님이 알아서 거저주시면 결국 우리가 배은망덕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반드시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하게 한 다음에 은혜를 베푸십니다. 인간은 사악해서 어떻게든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체적인 기도 없이 하나님이 알아서 무언가를 주시면, 우리는 그것을 우연이나 재수로 돌립니다. 운이 좋았다는 겁니다. 조상의 은덕으로 돌립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특색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한 후 응답하심으로써 핑계대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보다 우리의 필요를 더 잘 아십니다. 몰라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기도하실 때 중언부언하지 말고 엘리야처럼 조목조목 불을 주십시오, 비를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응답도 확실합니다.

 

엘리야는 간절히 구했습니다. 본문 42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보통 유대인들의 기도 자세는 서서 눈을 뜨고 하늘을 우러러 두 팔을 올린 자세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기도 모습은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박았다고 합니다. 당시 엘리야의 기도가 그토록 처절하고 간절했다는 것입니다. 온몸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는 간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의식이 아닙니다.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보십시오. 무릎을 꿇고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힘쓰고 애쓰며 기도하니 땀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졌습니다. 주님도 엘리야의 자세로 피땀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7-18절을 보면 엘리야의 기도에 대한 평가가 나옵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야고보서가 지적하는 비결은 <간절함>입니다. 간절함은 엘리야 기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금식기도든 철야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협박이 아니라 나의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소나무 뿌리를 뽑으며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 위협이 아니라 나의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요즘 우리의 기도에 간절함이 없습니다. 엘리야 같은 사람이 양 무릎 사이에 얼굴을 박고 기도하고, 주님이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다면, 우리 같은 사람은 머리를 땅에 묻고 기도해도 부족합니다. 사실 주님이 이미 예언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 7절 이하입니다. “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어떤 믿음입니까? 밤낮으로 부르짖는 간절한 믿음입니다. 신구약 성경 중에서 이 말씀보다 더 무서운 말씀도 없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다 형식적이고 건성으로 드리는 기도뿐일 것이라는 겁니다. 간절한 기도가 실종한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엘리야 같은 기도의 대가, 달인도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해서 놀라운 능력을 체험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온몸으로 기도해서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엘리야의 기도는 확신에 찬 기도였습니다. 본문 41절을 보면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이제 비가 오지 않는다고 고뇌하지 말고 안도하라는 겁니다. 왜냐면 제 귀에 큰 비 소리가 들린다는 겁니다. 이때는 아직 비를 달라고 기도하기도 전입니다. 엘리야는 이미 큰 비 소리를 이미 귓전에 듣고 있습니다. 대단합니다. 여러분,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미처 기도하기도 전에 이미 기도 응답부터 받았습니다. 그만큼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에 차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자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자세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가져야 할 신념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믿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너희가 믿고 기도하여 이 산더러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그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기도의 한계는 회의에 찬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패배주의자들입니다. 기도하기 전에 이미 기도자의 자세가 엘리야처럼 확신에 차 있어야 하는데, 비를 기도하기 전에 이미 비 소리를 듣고, 종달새 알에서 이미 종달새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확신은커녕 우리는 회의에 차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것을 들어주시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알고, 안 들어주시면 나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겠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기도해서 응답이 되면 횡재하는 것이고, 안 들어주셔도 본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다 불신의 소치입니다. 기도는 도박이나 투기가 아닙니다. 기도는 확신입니다. 비를 위해 기도하면서 이미 큰 비 소리를 듣는 행위가 기도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확신을 시험하신 후에 응답하십니다. 준비된 자, 은혜를 받을 채비가 된 자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연이나 실수로 응답을 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이미 비 소리를 듣는 사람에게 비를 내려주십니다. 이미 받은 줄로 확신하는 사람에게 그 구하는 바를 허락하십니다. 확신을 갖고 기도하셔서 여러분의 기도가 다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올 여름도 여러분이 엘리야처럼 감격하여 빗속을 달리게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