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그리스도인과 법

지난 주 수요일이 제헌절 65돌이었습니다. 사실 <법>이라고 하면 왠지 머리부터 지끈지끈 아파오고 불편한 느낌이 들어 괜히 멀리하고 싶은 게 우리 보통 사람들의 정서입니다. 그러나 민주시민, 더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한 사회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정해 놓은 여러 가지 규칙들을 바르게 지키고 또 성경이 말씀하는 법적 가치와 그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하고 또 신성한 책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전체보다는 개인을 상대하셨습니다. 사람들을 대하실 때 도매금이나 단체가 아닌 개체로서의 한 사람에 더 큰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전체를 무시한 개인주의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과의 고유한 관계성 속에 있으므로 전체라는 이름으로 마치 페인트칠을 하듯 획일화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께는 분명 사회구원보다는 개인구원이 먼저였습니다. 그럼에도 주의해야 할 사실은 그가 인간을 단지 정신적 개체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질서와 유리될 수 없는 존재로 보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복음사역은 일단 사회개혁이나 사법개혁보다는 사회와 법질서로부터 소외된 죄인들의 구원을 목표했다고 볼 수 있으나 만약 한 생명을 구하는 데 있어서 기존의 사회질서나 법질서가 그것을 방해하거나 가로막을 경우에는 가차 없는 결전도 불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선보다는 악, 살리기보다는 죽이는 법으로 전락한 당시 안식일법, 이혼법, 정결법과의 대결은 그야말로 목숨을 내 건 투쟁이었습니다. 실제 마가복음은 주님의 안실일법 파기 사건이 곧 그의 죽음의 최초 동인이었다고 밝힙니다(막 3:6). 


이렇듯 주님은 법의 왜곡된 해석과 그 부당한 적용에 반대하셨고, 개인의 인권을 해치는 법은 그 자체가 이미 악법이요 위헌이라는 입장이셨습니다. 바울 역시도 그리스도인들의 법적 자의식을 강하게 주장한 사람입니다. 바울 당시 고린도는 비록 로마제국의 식민지였을망정 헬레니즘 문명이 절정을 이룬 화려한 대도시였습니다. 특히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헬라사상은 에피큐리안들의 쾌락주의적 행복론이었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인간의 쾌락을 위한 것일 때만 참이요 진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일하기 위해서 먹기보다 먹기 위해 부득이 일했고, 진리를 밝히기 위해 철학을 하기보다 사변의 유희를 위해 우주와 인간을 논했으며, 심지어는 종교마저도 한갓 쾌락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고린도에는 미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고 거기에서는 천 여 명의 미녀 사제들이 날마다 예배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쾌락을 즐기는 게 곧 그들의 종교행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같은 쾌락주의가 인권을 옹호하고 냉정하게 시비를 가려야 하는 법정에까지 만연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재판은 흔히 <아고라>라는 광장에서 이루어졌는데 우선 방청객 중에서 배심원을 선정합니다. 20명, 40명, 100명 때로는 6천 명까지 동원한 예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은 으례히 두 패로 나뉘어져 서로 열띤 응원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더 이상 재판이 아니라 열광하며 보고 즐기는 일종의 스포츠 경기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세계 속에 그리스도교가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6장 2절을 보면 바울이 느닷없이 <성도가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며 묻고 있습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헬레니즘 문화권의 재판형식의 알레고리로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그 배심원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가히 혁명적인 그리스도인의 자의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무시함으로써 이 세계에 대해 초연하려는 은둔주의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이 세계로부터의 도피며 자기기만입니다. 그러나 엄연히 이 세계 속에 살면서도 자기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며 도리어 세상의 불의와 불법을 심판할 사명을 가졌다고 믿는 것은 실로 놀라운 혁명의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세계 개혁의 사명과 잘못된 기성사회의 방향, 타락한 재판관행, 악법 등을 변혁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훗날 천사까지도 심판할 권세를 가졌다(고전 6:3)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법적 자의식이야말로 얼마나 웃기는 얘기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