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14m 동일하신 하나님(히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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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4m
히 13:5-9
동일하신 하나님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믿음은 구원의 근거나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의 결과물입니다. 믿음은 우리 구원의 보증입니다. 믿어서 구원 얻는 게 아니라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에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의 보상이나 대가가 아니라 순수한 주님의 은혜입니다. 선물입니다. 로마서 5장 6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계속됩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아직 경건치 않을 때,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로 살 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 라고 합니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구원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구원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 지도 몰랐습니다. 우리는 졸지에 구원을 당한 겁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주일성수하고, 기도해서가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행위입니다. 그래서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은 허풍이지만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란 말은 진리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작품이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은 하나님의 본질만큼이나 영원합니다. 구원이란 약해지기도 하고, 강해지기도 하는 우리 믿음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의 은혜에 근거한 것이기에 구원은 절대 불변입니다.
구약 호세아 6장 3절에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이 없다’고 합니다. 개역성경에는 ‘그는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다’고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새벽빛처럼 일정합니다. 새벽 빛은 일출을 뜻합니다. 새벽 일출은 얼마나 어김이 없습니까? 만일 햇빛이 일정하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요? 벌써 이 지구는 불덩어리가 되었거나 얼음덩어리가 되었을 겁니다. 새벽 빛이 일정하기에 우리가 여전히 생존하고 있습니다. 요즘 지구 온난화 때문에 지구촌의 시름이 깊습니다. 이것은 태양이 뜨거워져서가 아니라 화석연료나 온실가스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태양 문제가 아닙니다. 태양은 항상 일정합니다. 주님도 일정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이기에 그 구원도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동일하심에 대한 두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동일합니다. 5절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영원토록 동일하게 나를 사랑하시며 결코 나를 버리거나 떠나시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 얘기를 하면서 하는 것이냐면, 돈 얘기를 하며 하셨습니다. 돈은 결코 우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돈은 무자비하고 잔인합니다. 사람들을 모조리 노예로 삼고 하수인으로 삼습니다. 설경구가 나온 <공공의 적> 영화를 보셨지요. 거기에 나오는 공공의 적이 누구입니까? 설경구가 집요하게 추적하는 이성재입니까? 살인범 이성재, 자기 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한 이성재, 자기와는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이성재가 공공의 적입니까? 그 영화의 메시지는 이성재가 아니라 <돈>입니다. 이성재는 18억 때문에 자기 부모를 그토록 잔혹하게 죽였습니다. 다 돈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평생 돈을 짝사랑하다가 맘모니즘의 광신도로 살다가 죽습니다. 창세기 35장 2절을 보면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라고 합니다. 어떻게 야곱이 이방 신상을 소유하며 섬길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게 실은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얘기입니다. 우리는 안 그런 척 할 뿐입니다. 너무 익숙해서 자기 스스로 속고 살 뿐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섬깁니다. 가운데 보좌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좌우 양쪽에는 우상을 모시고 삽니다. 돈, 명예, 권력 같은 것들 말입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고 있습니다. 돈 안 섬기는 사람 있습니까? 여러분, 주님만 사랑하셔야 합니다. 왜냐면 요한복음 13장 1절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나를 영원히 사랑하실 분은 오직 주님 뿐입니다. 반드시 돈은 여러분을 배신합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절대 떠나거나 버리지 않는 주님만 사랑하라는 겁니다. 우리의 영원한 사랑과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한 분 주님입니다.
다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히 동일합니다. 본문 9절입니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왜 다른 교훈에 귀 기울이지 말라고 합니까? 다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만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세상에는 기독교 진리 말고도 훌륭한 교훈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교훈들은 한낱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습니다. 곧 마르고 시듭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싱싱합니다. 그래서 최후의 진리는 말씀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에 기초하고 그 말씀이 중심이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교의 가르침은 관대합니다. 그러나 불교에 비해 우리는 사용하는 용어부터가 무시무시합니다. 살벌합니다. 다 죄인이고 죽일 놈들이라고 합니다.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하고, 툭 하면 사탄아 물러가라고 합니다. 이 얼마나 극단합니까? 기독교의 언어는 다 이렇게 험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고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는 다 같으니까 비슷하니까 너나 나나 진품이라 치자는 것에 동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관대한 게 아니라 무책임이고 사기입니다. 현미경을 들이대서라도 진품과 가짜를 구별해야 합니다. 비슷하니까 다 진품으로 인정하자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진품을 찾겠다는 게 배타적입니까? 그냥 넘어가자는 게 어떻게 관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정답과 오답을 확실히 가리자는 게 어떻게 독설입니까? 그럴 듯한 게 많아도 진품은 하나입니다. 다른 것은 짝퉁입니다. 그럴 듯하다고 다 진품이나 명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수표감별기도 제대로 구별 못하니 100억 짜리라고 인정하자고 하는 것은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제 종교가 다 남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더불어 살자고 하니 다 인정하고 종교다원주의로 가자?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옳은 게 아닙니다.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게 기독교의 배타성입니다. 현미경을 대서라도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자는 게 기독교의 도그마입니다. 어떤 사람이 뉴욕에서 시카고로 가는 기차에 무임승차했습니다. 그런데 승무원에게 걸립니다. 그 사람이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승무원에게 자신은 뉴욕타임스 사회부 기자인데 급하게 서두르다 신분증을 집에 놓고 왔다고 했습니다. 미국에는 기자들이 무임승차하는 관행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승무원이 저기 특실에 편집국장님이 계신데 그분이 확인해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특실까지 가는 동안 그 사람이 얼마나 죽을 맛이었겠습니까? 특실에 가서 거기 있던 편집국장에게 이분이 사회부 기자 맞습니까? 하니까, 편집국장이 아니 자네가 어쩐 일인가? 하고 얘기했습니다. 무임승차한 사람이 고맙다고 하자, 너무 고마워할 것 없다며 나도 가짜라고 했습니다. 눈 딱 감고 서로 진짜라고 쳐주자는 겁니다. 절대 관대해서가 아니라 서로 속아주며 공모하자는 수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타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답을 알기에 오답을 오답이라 말합니다.
왜 기독교는 진품이고 다른 것은 가짜입니까? 주님의 말씀만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풀처럼 시들기 때문입니다. 주님만 살아계십니다. 기독교 진리는 그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이기에 살아있는 진리입니다. 그 주님이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기에 그분의 말씀이 영원한 진리입니다. 주님의 그 말씀을 내 영의 진정한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에 늘 생명이 충만하길 빕니다.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의 그 말씀이 여러분 개인과 가정에 충만해서 늘 행복한 주의 가정이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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