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와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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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매동 성남아트센터에서는 스페인의 근현대 미술전인 <올라! 스페인>이 열리고 있습니다. <스페인 미술>이란 말에 너무 낯설어 하거나 지레 겁먹지 마시고 꼭 한 번 다녀오시길 권합니다. 독특한 정신세계로 수많은 걸작들을 남긴 파블로 피카소와 초현실주의의 대가인 살바도르 달리, 밝은 색채와 단순한 형태로 우리 정서에도 몹시 친숙한 호안 미로 등 근현대 미술계의 슈퍼스타들뿐 아니라 팝아트, 사진, 설치, 판화,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 23명이 동원되어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어서 19세기부터 최근의 경향까지 스페인 미술의 진수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유럽의 근현대 미술의 중심은 분명 프랑스입니다. 파리는 인상주의를 시작으로 입체파, 야수파, 다다이즘, 그리고 초현실주의까지 근대 예술의 메카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 분명한 사실은 그 다양한 사조들의 최일선에는 언제나 피카소, 달리, 미로, 타피에스 같은 스페인의 작가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스페인 없이 유럽의 근현대 미술을 논할 수 있을까요? 19세기 전 유럽을 장악한 인상주의가 막 후기 인상주의로 옮겨갈 무렵 스페인의 한 천재 예술가가 등장합니다. 그가 바로 20세기 초반 세계 미술사의 최대 사건이라 부르는 입체파 운동의 창시자 파블로 피카소입니다. 입체파는 대상을 정형화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대신 한 화폭에 다양한 각도를 그려 넣는 화법으로 후기로 갈수록 더욱 철저하게 대상을 해체하게 되는데 따라서 입체파 이후의 회화는 본격적으로 추상의 길로 접어들면서 유럽의 미술은 초현실주의라는 또 한 번의 센세이션을 맞게 됩니다. 초현실주의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와 꿈의 세계를 형상화하고자 한 미술운동입니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과 환상의 세계를 중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조를 대표하는 작가가 바로 스페인의 화가들인 살바도르 달리와 호안 미로입니다. 미로의 작품은 복잡한 심리 묘사보다는 밝고도 가벼운 색채와 단순한 기호들로 화폭을 채우는 서정적 초현실주의인데 반해 달리는 프로이트에 푹 빠진 그야말로 몽환적인 초현실주의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숱한 주님의 십자가상 가운데서도 달리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를 가장 좋아합니다. 리갈 항구의 하늘 높이 달리신 주님을 묘사한 그림인데 특이하게도 주님의 십자가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로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작품이 이번 전시회에 나왔습니다. 달리는 풍부한 상상력과 탁월한 기법으로 성화를 많이 제작했는데 성화만큼은 편집광적인 자아도취에서 벗어나 매우 정교하고도 수려한 필치로 형이상학적인 신비감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달리가 프로이트를 알게 된 것은 20대 초반 마드리드 미술학교를 다닐 때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고 나서였습니다. 그는 <일생일대의 발견>이라며 그 책에 매료당했고, 그 때 이미 60대 중반이었던 프로이트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습니다. 달리가 신문에 난 프로이트의 사진을 보고 그린 초상화만 해도 넉 점이나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달리만의 짝사랑이었을 뿐 정작 프로이트는 좀처럼 달리를 만나주지 않았고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달리가 프로이트를 만난 건 1938년 7월 19일 영국 런던에서였습니다. <돌기는 돌았구먼!> 이게 당시 달리를 만난 프로이트의 소감이었다니 ….
달리는 <달리, 나는 천재다!>(1952-63)는 자신의 일기집 서문에 <천재가 쓴 최초이자 유일한 일>이라 쓸 만큼 초현실주의자였습니다. 또 <굶을지언정 아무거나 먹을 수는 없다>고 할 만큼 소문난 미식가에다 특히 갈비를 좋아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갈리를 모델로 <양갈비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갈리>라는 작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달리의 회화를 얘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소재인 <녹아내리는 시계>는 흐물흐물한 치즈에서 착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듯 독창적이고 기상천외해서 사람들을 유쾌하게 하고, 또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이어서 더위를 싹 잊게 하는 달리가 이 삼복에 분당까지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