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딸 다시스여!(사 23:8-12)

딸 다시스여!

사 23:8-12


<딸 다시스여 나일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10절).

다시스는 욕망의 도시였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니느웨로 가라고 명하셨지만 그 말씀을 거스려 다시스로 향했습니다. 그 곳은 그만큼 모든 게 풍성한 유혹적인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모진 고난으로 인해 결국 그 다시스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요나처럼 세상적인 욕망을 품은 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은 고난의 풍랑이 끊이지 않고 때로는 물고기 뱃속에 갇히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다시스를 포기하지 않는 한 풍랑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 모든 누리던 영화를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교만하던 자가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9절).

세상 사람들이 <누리던 영화를 욕되게 하시고 교만한 자가 멸시를 받게> 하심은 진작부터 정해놓으신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부강한 성읍이고, 아무도 멈춰 서게 하지 못할 만큼 거대한 욕망의 도시라 해도 한순간 그 힘이 기울어 망하게 하심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이 땅의 모든 영광과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헛되고 허망한 것인가를 깨닫게 하십니다. <열방을 흔드시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시는 것>(11절)은 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을 통해 남 앞에서 거들먹거리며 자신의 영광을 자랑하고 영원히 그런 지위를 누릴 듯 자신만만해 하는 교만과 허세를 꺾으십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이 오랜 섭리와 경륜에 진심으로 복종하십시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잠 16:18)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마음에 깊이 새기십시오.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라

<이르시되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온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12절)

시돈은 정말 역사적으로도 <희락>이 없고 <평안>이 없었습니다. 애굽과의 해상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했지만 결국 앗수르, 바벨론의 지배를 면치 못했고 후에는 그리스, 로마, 아랍 순으로 철저하게 유린당해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온갖 지배자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치 피지배의 박물관과도 같은 도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는 십자군 전쟁의 각축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성을 흔드시고 무너뜨리시면 견딜 장사가 없습니다. 시돈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과 가장 빈번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럼에도 그 둘은 가깝고도 먼 이웃이었습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준비할 때,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는 그들이 백향목과 기술자 등을 지원했고, 심지어 솔로몬은 시돈의 여인과 결혼을 하기도 했으며, 아합은 시돈 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여 정치적 동맹을 맺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게 이스라엘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고 말았습니다. 전략적으로 시돈을 가까이 했던 이스라엘마저도 희락과 평안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믿는 자들의 대인관계는 신중해야 합니다. 함부로 동맹을 맺고 세상 문화에 타협하다가는 나도 그들처럼 망합니다. 세상에서 남과 더불어 살되 구별된 삶을 고집하십시오. 거기에 바로 성도의 소중한 정체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