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꿀과 쑥(잠 5:1-14)

2011. 4. 28
꿀과 쑥
잠 5:1-14

육체의 정욕이 주는 쾌락은 언제나 유혹적입니다. 그야말로 <꿀>처럼 달고, <기름처럼>(3절) 매끄럽습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그게 결국<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처럼>(4절) 나를 해칠 것이라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5절). 정욕을 좇아 쾌락만을 추구하는 자의 결말을 경계하라고 합니다. <사지>와 <스올>이란 모두 쾌락에 빠진 자들의 불행한 최후를 가리키는 상징들입니다.

존영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이 잔인한 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9절).
<존영>이란 <명성>이란 말로 청년의 때의 아름다움과 신선함 혹은 젊은 패기 등을 뜻하는 어휘입니다. 그렇습니다. 젊은 시절 음녀의 유혹에 빠져 육체적인 쾌락을 탐닉하는 자는 스스로 젊음이라는 자신의 존영을 짓밟는 자해자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네 수한이 잔인한 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한 것은 그렇게 방탕한 자는 결국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요절하기 십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술과 마약, 우울증 등으로 고통하다 자살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만나 집단 자살을 하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존엄과 존영을 무참하게 짓밟는 범죄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재물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두렵건대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네 수고한 것이 외인의 집에 있게 될까 하노라>(10절).
<네 재물>이란 하나님이 그에게 맡겨 관리하고 집행하게 하신 <하나님의 소유>를 말합니다. 그런데 육체의 쾌락에 빠진 자의 재물은 결국 <타인>의 손으로 다 넘어가 <외인의 집>에 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와도 같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떠났던 둘째 아들이 창녀들과 함께 허랑방탕하다 거지꼴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우리 주변에도 무책임하고도 무질서한 생활로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쾌락을 좇으며 살다 상속 받은 많은 유산을 다 날리고 빈털터리가 되어 구걸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육체의 정욕은 때로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켜 바른 판단이나 옳은 처신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에는 꿀처럼 달고 황홀하지만 나중에는 쑥처럼 쓰고 고통스럽다고 한 현자의 말씀이야 말로 정곡을 찌른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선생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12-13절).
쾌락에 발을 담근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남의 충고나 훈계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자신의 삶을 고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일체 남의 꾸지람이나 조언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를 훈육하고 애정 어린 충고로 권면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다 떠납니다. 나중에는 그 누구의 제재도 없이 더욱 깊은 쾌락의 수렁에 빠지게 되므로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는다는 건 실로 치명적인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육체적 쾌락에 젖어 사는 자의 최후야말로 필연적으로 <쑥 같이> 쓸 수밖에 없습니다. 부단히 자신의 삶을 살피며 하나님의 면전에서 더욱 성실히, 더욱 경건히 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