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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7n 원초적 감사(살후 2:13-17)



20130707n

살후 2:13-17

원초적 감사


[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이하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했고, 오늘 본문에서는 왜,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감사해야 하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처음부터 택함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늘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13절 상반절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항상 우리가 감사해 마땅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를 택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절대 남보다 착하거나 잘 나서, 잘 믿어서, 기도를 더 많이 해서, 헌금을 더 많이 해서 그 종합점수가 남보다 나아서 주님이 나를 택하신 게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처음은 태초를 말합니다. 아니 태초 이전, 창세 이전을 말합니다. 에베소서 1장 4절 이하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원초적 감사의 이유입니다. 그 어떤 전제도 자격도 없습니다. 그래서 선택은 하나님의 일방적 주권행위고 무조건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선택은 하나님과 나와의 합작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홀로 행하신 작품이며, 그것도 창세 이전의 작품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할 일이 있다면 오직 감사뿐입니다. 어떤 환경, 처지, 상황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는 게 우리의 도리입니다. 


둘째, 13절 하반절입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입니다. 이것이 우리 감사의 근거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 이전부터 선택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를 계속 관리하십니다. 어떻게요? 거룩하게 관리하십니다. 이것을 성화(聖化)라고 합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 자녀들의 유일의 지상과제는 성화입니다. 왜 성화가 우리의 지상과제일까요? 우리의 목표는 천국인데, 천국은 한 마디로 거룩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흰 세마포를 입는 곳입니다. 상징적으로 거룩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대한 거룩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생명이 있는 한 성화에 진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훗날 우리가 천국 가서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거룩이 우리의 지상목표입니다. 그런데 창세 전에 이루어진 우리를 선택함은 하나님이 주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간다는 성화는 그 주체가 우리입니다. 우리가 힘쓰고 애쓰며 이루어가야 할 과제입니다. 거룩을 우리 몸에 익혀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화는 내 희생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성화에는 상급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체인 그 성화조차도 사실은 성령의 격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성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화를 이루면 하나님이 그 공을 우리에게 돌리시며 상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다. 그래서 우리는 성화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해야 할 과제임에도 성령께서 도우셔서 성화의 과제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감사해야 옳습니다. 성령께서 나로 하여금 열심을 품게 하시고, 말씀을 가까이 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선행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교제를 하게 하시는 과정에서 성화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빠지면 사실상 성화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 또한 우리의 우리의 감사조건입니다. 


셋째, 위로와 소망입니다. 16절 하반절입니다.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세상도 나름대로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순간적입니다. 궁극적이지 못합니다. 우리를 속이는 거짓 위로요 소망일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소망은 참 되고 영원합니다. 지난 반 년 동안 처하고, 절망과 좌절로 흔들리며 무너지려고 했습니까? 그럼에도 전반기를 잘 마무리하고 후반기를 시작하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후반기도 마찬가집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셔야 합니다. 시편에도 모세가 쓴 게 있습니다. 시편 90편입니다.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모세가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게 인생의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우리에게 이생뿐이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실망하게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을 갖게 하십니다. 


이 세 가지 사실만으로도 얼마든지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비록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송아지 없고, 우리에 양이 없다 해도 이 세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후반기도 더욱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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