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로와 시돈(사 23:1-7)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두로와 시돈
사 23:1-7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고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지정학적 특성을 가진 곳이라 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도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일찍부터 무역을 위해 베니게에 의존했습니다(삼하 5:11). 베니게인들은 2300년의 역사를 가진 노련한 뱃사람들이었고, 두로는 그런 베니게의 가장 중요한 무역항이었습니다. 두로 사람들은 가나안 족속(11절)이었으나 정치적으로는 애굽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와 스페인의 다시스를 오가며 무역했는데 물질적인 풍요와 바다를 장악한 해상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독립을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두로여, 슬퍼할지어다
<두로에 관한 경고라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 들에는 곳도 없음이요 이 소식이 깃딤 땅에서부터 그들에게 전파되었음이라>(1절).
이사야는 지금 무역 거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베니게의 선원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그들에게 슬피 부르짖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슬픔이 두로뿐 아니라 그들의 무역 상대국인 다시스와 애굽의 깃딤에까지 미쳤다고 합니다. 다시스와 깃딤은 베니게 사람들이 항해하던 뱃길 양쪽 끝을 말합니다. 당시 두로는 그야말로 열국의 시장이었습니다. 교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그 덕분에 돈이 흔했고 늘 사람들이 흥청거리며 즐거워하는 희락의 성(7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안일하고 교만했으며 또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경멸했습니다. 두로 사람들은 특히 하나님의 종들이 선포하는 경고의 메시지를 몹시 싫어했습니다. 인생이 너무 즐겁고 행복한데 그들이 삶의 흥을 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로는 하나님 없이 오로지 부와 번영만으로 살겠다는 성읍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멸망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슬피 부르짖으라 하신 게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로란 반드시 옛 베니게의 도성만은 아닙니다. 이 시대의 숱한 나라와 도시들도 실은 다 두로와 시돈에 다름 아닙니다. 지금의 모든 부와 번영과 문화도 본질적으로 옛 두로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디 슬퍼하고 부르짖으며 우리 시대의 두로와 시돈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시돈이여, 부끄러워 할지어다
<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 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요새가 말하기를 나는 산고를 겪지 못하였으며 출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들을 양육하지도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하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라>(4절).
시돈은 같은 해변에 위치해 있었습니만 좀 더 오래된 성읍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두로가 시돈의 식민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딸이 자라서 어머니보다 훨씬 더 부유하고 더 많은 것을 이룬 것처럼 나중에는 두로가 더 번영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시돈은 이스라엘에게 우상숭배의 악영향을 많이 미쳤고, 부도덕한 상업주의를 전파하며 오랜 세월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왔습니다. 우리는 이웃들에게 아름다운 영향력과 덕을 행사해야 합니다. 은혜로운 영향력을 미쳐야 합니다. 그럼에도 두로와 시돈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두로와 함께 시돈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돈을 부끄럽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잘난 체하며 교만하게 굴고 나쁜 이교적 가치와 문화로 이스라엘에게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던 두로와 시돈을 징계하사 70년간의 부끄러움에 처하게 하셨던 하나님의 심판을 잊지 마십시오. 매사에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지 마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