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사 2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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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사 22:12-18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을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13절).
전형적인 쾌락주의고 허무주의입니다. 현대인들의 전형적인 삶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바울도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의 삶이란 필연적으로 <내일이면 죽으리라 오늘 먹고 마시리라>는 향락주의, 허무주의로 귀결된다며 나날이 팽배해 가는 현대 쾌락주의 앞에서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 하리라>(32절).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4절).
하나님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재난을 경고하시며 선지자를 통해 환난을 예언하신 의도는 당연히 그들이 애통해하며 머리를 뜯으며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는 것이었는데 유다는 엉뚱하게도 하나님의 그런 뜻을 거스리며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잔치를 베풀고 온갖 환락과 쾌락을 다 즐기며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진탕 먹고 마시자고 남까지 선동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변방에 적국이 없거나 곧 그들의 성읍이 적의 수중에 떨어질 위험이 없기라도 하다는 듯 어느 때보다 더 안일하게 흥청망청 했다는 것입니다. 애곡해야 마땅하고 옳은 자들이 술을 즐기고 고기를 탐했다는 것입니다.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비웃고 선지자를 조롱하는 처사에 다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죽는 것으로 모든 게 끝난다면 살아 있는 동안 최대한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사는 게 가장 실리적인 인생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우리를 심판하신다>(전 11:9)면 우리는 결코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보다 경건하게 책임적으로 회개하며 살아야 합니다.
너를 공 같이 던질 것이라
<반드시 너를 모질게 감싸서 공 같이 광막한 곳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에 있으리라>(18절).
<셉나>(15절)는 히스기야 왕의 서기관이며 궁을 관리하던 고위 관료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향해 <모질게 감싸서 공 같이 던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자야 말로 <내일이면 죽으리니 오늘 먹고 마시자>는 쾌락주의, 향락주의의 선봉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하나님이 공처럼 멀리 차시면 그 인생은 그것으로 끝나버립니다. 아닌 게 아니라 <네가 그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에 버려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객사할 것이라는 예언이고 그가 타고 다니던 영광의 수레도 그 주인의 운명처럼 그렇게 광야에 널부러질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응징은 언제나 이토록 무섭고 가차가 없으십니다. 나라든 개인이든 왕이든 관료든 하나님이 그를 모질게 차버리시면 마치 축구 선수가 프리킥을 차듯 그렇게 아주 먼 광야까지 날아가 패망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가 누리던 영광도 버려진 수레처럼 다 끝장나고 맙니다. 따라서 누구든 절대 하나님의 발길에 차이지 않아야 합니다. 공처럼 모질 게 던져지지 않아야 합니다. 부디 당신의 운명이 셉나처럼 던져진 공이 아니라 주님께 든든히 붙잡힌 복된 인생이 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