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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4일 주일낮예배/부활주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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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본문: 요 20:11-18</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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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제목: 어찌하여 우느냐?</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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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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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부활절을 맞으신 여러분과 가정에 부활의 새 생명과 산 소망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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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원초의 부활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안식 후 첫 날, 그러니까 바로 오늘 새벽입니다. 안식일은 토요일이고 그 후 첫 날은 주일입니다. 오늘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해 몇 명의 여자들이 주님 시신에 바를 향유를 준비해서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무덤의 돌문이 활짝 열려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주님의 시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시신이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본 본문 11절을 보면 마리아가 이 무덤을 향해 울었다고 합니다. 원문을 보면 아주 슬피 울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항상 헛갈립니다. 주님의 시신이 없어서 울었다면 주님이 시신이 거기에 있었으면 기뻐했을까요?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주님의 시신이 무덤 안에 있으면 부활 못한 것이니 슬퍼 우는 게 맞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시신이 없으면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신 것이니 기뻐해야 할 터인데, 마리아는 아주 슬피 울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본문 13절을 보면 천사가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고 하고, 15절에도 주님이 여자여 왜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합니다. 누가복음 24장 5절을 보면,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주님이 마리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다 아쉬움의 표현이고 부드러운 책망입니다. 결국 주님의 측근들조차도 주님의 부활에 대한 기대나 믿음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빈 무덤을 보고 슬퍼한 겁니다. 누가복음 24장에도 보면, 주님이 빨리 가서 내 형제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주님의 제자들에게 가서 주님의 부활을 전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여인들의 말을 헛소리라며 무시했습니다. 원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이토록 어렵습니다. 부활소식을 전하니 사도들조차 헛소리한다고 했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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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과는 달리 놀라운 인물 한 명이 있습니다. 그것도 구약에 등장하는 부활신앙의 원조입니다.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어렵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얘기니까 무조건 그러려니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아비가 100세에 얻은 왜 아들의 목을 스스로 따서 각을 떠서 하나님께 다 태워 바치는 번제를 드릴 수 있습니까? 상상이 되십니까?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일말의 저항도 없이 자기의 생명보다 10배 20배 더 소중한 아들의 목을 따겠다고 시퍼런 칼을 들이댈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아브라함을 정신 멀쩡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저는 만약 창세기 22장만 읽고 신약의 히브리서 11장이 없었다면 아직도 아브라함 때문에 시험이 들어 끙끙대고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이런 겁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 상반절입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아브라함은 결코 정신이 나가서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주실 것이라고 믿었기에 주저 없이 잡아 바치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히브리서 11장 19절 하반절입니다.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이 얼마나 멋진 부활신앙의 승리입니까? 아브라함이야말로 우리 믿음의 영원한 조상, 곧 부활신앙의 원조가 되어 마땅합니다. 내가 아들을 잡아 바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내 아들을 살려주신다는 것을 믿었기에 주저함 없이 아들의 목에 칼을 댄 겁니다. 부활신앙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죽음 앞에서 절대 체념하거나 절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살려 주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아브라함은 바로 그런 부활신앙에 자기 목을 내댄 겁니다. 아브라함이 우리 믿음의 조상입니다. 우리는 그 계보에 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 믿음을 계승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얼마나 소망스런 사실입니까?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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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당신의 독생자를 처절한 십자가의 제단에 바쳤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오직 하나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내 아들은 다시 살아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번제로 아들을 바친 겁니다. 그 기대와 확신 그대로 주님이 죽음 가운데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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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부활이 무엇입니까? 나사로처럼 살아나는 겁니까? 회당장 야이로의 딸처럼, 나인성 과부의 아들처럼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소생입니다. 회생(回生)입니다. 부생(復生)입니다.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장으로 유명한 고린도전서 15장 51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여기서 말하는 비밀은 부활의 비밀입니다. 종말의 나팔, 주님의 재림의 나팔이 울리는 순간 우리가 다 오늘 새벽 부활하신 주님처럼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사건이 부활입니다. 이미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죽은 사람들은 살아나면서 변화되고, 그때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은 산 채로 변화됩니다. 이어지는 고린도전서 15장 52절 이하입니다.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두 번 다시 죽지 않으며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되는 게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하면 지금 이런 몸이 아니라 다른 몸, 곧 부활체입니다. 이 몸으로는 영원히 못 삽니다. 이런 몸은 한계가 있기에 영생할 수 없습니다. 신령한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두 번 다시 아프지 않고, 죽지 않고, 늙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그때는 누구도 더 이상 신체적인 콤플렉스를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장애인도 그때는 온전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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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하게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5절 이하에 부활을 꽃과 꽃씨에 비유했습니다. 작고 볼품없는 씨를 땅에 심으면 그게 썩어 싹이 꽃이 핍니다. 그 놀라운 변화가 바로 부활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은 부활을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부활은 인간관계도 새롭게 합니다. 부활 때는 시집 장가도 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 가서 빚쟁이 만나면 어쩌나 고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부활 때는 자연도 변합니다. 지금의 환경으로는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시간이 가면 망가지며 낡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삶의 요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사야 11장을 보면, 사자가 풀을 먹고,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세계, 곧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비전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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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오늘 새벽에 발생한 주님의 부활이 왜 우리에게 중요합니까? 장차 있을 우리의 부활의 보증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시대를 개막하신 겁니다. 성경은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첫 열매는 이제 열매가 열렸으니 내년부터 계속 열매가 열린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으니 이제 우리는 그 다음 열매로 부활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부활이야말로 우리에게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부활을 보장하고 보증하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보면서 나의 부활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삶은 그 자체가 허무요 절망, 고통이요 비극일 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의 무덤 앞에서 운 것도 부활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자여 왜 우느냐?’고 하십니다. 더는 무덤을 향해 울지 마십시오. 절망 앞에서 허무를 노래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을 보증하셨습니다. 지금 내 뒤에서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모두 주님의 그 음성을 듣고 눈물을 닦고 슬픔을 거두십시오. 날마다 기쁨과 감사로 사시길 기원합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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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설교보기: <a href="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5ltBHcJbqBc$">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5ltBHcJbqBc$</a></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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