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30m 발을 씻으라(요 13: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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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30m
요 13:4-11
발을 씻으라!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가 다 죄인이라고 하면 기분 나빠 합니다. 어떤 분들은 따지고 대들기까지 합니다. 심지어는 믿는 사람들도 죄 얘기하면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인입니다. 다윗은 내가 죄 중에 잉태되고 죄 중에 출생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행위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이것이 원죄입니다. 우리가 아담의 후예인한 이 원죄의 숙명은 절대 피할 수 없습니다. 부모나 조상의 병이 후손에게 유전되듯이 원죄도 그렇게 우리에게 유전됩니다. 우리가 모태 신자라는 말처럼 모태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태어난 이후 우리 스스로 자범죄를 짓습니다. 이 또한 우리는 피할 수 없습니다. 죄성을 갖고 태어나기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범죄를 범합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는 행위로 생각으로 죄를 지으며 삽니다. 우리가 몰라서 죄 짓는 게 아닙니다. 뻔히 알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성경은 이런 죄를 짐짓죄라고 합니다. 또한 죄 중에는 고의로 짓는 죄도 있습니다. 죄가 주는 쾌감으로 능동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성경은 고범죄라고 합니다. 이렇게 날마다 죄에 쩔어사는 죄인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베드로전서 1장 18절 이하입니다.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이것을 우리는 구속, 대속이라고 합니다. 히브리말로는 <짜다크>, 헬라어로 <디카이오> 라고 합니다.
원죄, 자범죄, 고범죄를 다 씻고 깨끗하게 된 사람들은 더는 죄를 범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중생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죄를 씻은 사람들은 더는 죄를 범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모든 죄를 씻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더는 죄를 범하지 않습니까? 여전히 우리는 죄를 잘 짓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분열을 겪습니다. 정말 내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 라는 겁니다. 거듭났다고 하면서 여전히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회의를 느낄 때 우리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택한 백성 맞는가? 오죽하면 바울 같은 사람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라고 했겠습니까. 그가 사도 노릇을 한참 하다가 이런 비명을 지른 겁니다.
아무리 거듭나고 새 사람이 되었다 해서 당장에 우리가 성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 태어났다고 당장 걷고 뜁니까? 아닙니다.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처음에는 여전히 죄 짓고, 엎어지고 자빠집니다. 그러나 이제는 똑같은 죄를 범해도, 전과 다를 바 없는 죄를 짓는다 해도 그 죄의 성격은 다릅니다. 전에는 마귀의 종으로 살면서 마귀가 시키는 대로 죄를 범하였지만, 지금은 마귀가 내 의지를 강제해서 본의 아니게 내가 죄를 범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마귀가 시켜서가 아니라 옛 사람의 습성 때문에, 그 탄력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로마서 6장 11절을 보면, ‘이제 우리는 죄에 대해 죽은 자들이다’ 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죄의 통치, 지배, 죄의 지배를 받던 옛 사람이 죽었다는 뜻이지 죄에 대한 습성, 기호, 친화력이 죽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 짓는 걸 좋아합니다. 분명히 이제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제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안 지으면 금단현상이 생깁니다. 바로 그 꼴입니다. 하루아침에 무 자르듯 죄와 결별할 수 없습니다. 죄성이 우리 몸에 완전히 배었습니다. 죄성은 니코틴보다 더 무섭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죄를 범합니다. 죄가 우리 몸에 훨씬 더 익숙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가 죄를 지어도 못난 신자요 나쁜 신자일 뿐이지 우리의 신분이나 소속이 옛날로 환원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마귀의 종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못난 자식, 불효자일 뿐 하나님의 자녀 신분이 박탈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장 1절에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라고 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녀의 신분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든지 더는 정죄함을 받지 않으니 맘 놓고 죄 지으며 살아도 됩니까? 전에는 그게 불안해서 늘 불편하게 죄를 지었는데, 이제는 맘 편히 안심하고 죄를 지어도 됩니까? 로마서 6장 2절은 분명히 ‘그럴 수 없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왜요? 죄를 지으면 받은 구원이 무효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죄를 지으면 천국 갈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천국에 가서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영광은 내가 이 땅에서 얼마나 거룩하게 살았느냐로 결정됩니다. 그것을 교리적으로 성화(聖化)라고 합니다. 천국의 영화는 이 땅에서의 성화 수준이 결정합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으며 죄를 지으며 살면, 성화가 그만큼 지체되기에 훗날 천국 가서 누릴 영광이 좋지 못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합니다. 구원은 받지만 영원히 남루한 구원을 면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심하고 죄 짓자가 아니라 천국의 영화를 관리하기 위해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성화에 힘써야 합니다. 어떻게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필사적으로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짓지 않으면 좋겠으나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화에 힘쓴다 해도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환경이 너무도 유혹적이고, 세상이 이미 구조악, 곧 악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이 이 문제에 대한 답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최후만찬석상입니다. 주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기려 하니, 베드로가 완강히 사양합니다. 왜냐면 당시에 남의 발을 씻는다는 것은 종이나 노예가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선생이 발을 씻긴다고 하자 사양한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이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 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우리 죄를 씻어주는 분이 아니시라면, 주님과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생명을 뜻하는 자기의 피를 바쳐 우리의 죄를 씻기셨기에 주님과 우리가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토록 심각하게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감짝 놀라며 발뿐 아니라 손도, 머리도 감겨 주십시오 라고 합니다. 그때 주님이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 이미 전신을 목욕한 자는 손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목욕한 자들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씻음 받았습니다. 새벽에 사우나를 다녀와도 저녁에 손발을 씻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뜻입니다. 목욕을 하였지만 손발이 더러워질 때마다 그때그때 손발을 씻으라는 겁니다. 주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새 사람이 되었을지라도 그때그때 손발을 씻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성막이나 성전 구조를 생각해 보십시오. 성막 뜰에 들어서면 그 한 가운데 번제단이 있습니다. 그 번제단에서 제물을 드리며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뵙기 위해 성소로 들어갑니다. 그 성소 앞에 물두멍이란 게 있습니다. 그 용도는 성소로 들어가기 위해 거기서 손을 씻는 겁니다. 분명히 번제단에 제물을 드림으로써 전신을 목욕했습니다. 죄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중요합니다. 성소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성소 앞에 놓인 물로 손을 씻어야 합니다. 주님의 보혈로 깨끗해진 자라도 반드시 그때그때 손발을 씻어야 합니다.
손과 발을 씻는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그때그때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사랑도 속으로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고백해야 하듯이, 죄도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 주님 앞에 실토해야 합니다. 죄는 내 안에 그냥 품고 있으면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백해무익입니다. 주님 앞에 끄집어 내놓으면 주님이 알아서 처리하십니다.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가 성사 중에 중요합니다. 고해를 하면 사제가 대속의 기도를 드리고 죄 용서의 선언을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합니다. 우리 개신교는 그런 중보적 기도가 없습니다. 직접 주님을 뵙고 직접 자신의 허물과 죄를 고백하라는 겁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죄를 내 안에 담고 살면 암이 됩니다. 아주 비겁해지고 늘 불안합니다. 주님 앞에 다 고백해야 내 몸과 정서가 밝아집니다. 이것이 손발을 씻는 행위입니다. 회개했으면 확신을 가지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그 말씀을 신뢰함으로 죄 용서를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면 반드시 용서하십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용서는 말씀에 근거해야지, 무슨 화끈한 느낌이나 신비체험을 통한 게 아닙니다. 주님이 용서하겠다는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 영혼, 정신, 육체의 건강이 회복됩니다. 모든 죄의 짐을 주님 십자가 아래에 다 내려놓으십시오. 주님은 우리 죄가 진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주님 앞에 사죄를 빌고 용서를 확신하십시오. 그러면 육신의 약함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건강해지면 육신의 약함을 이길 수 있습니다. 표정이 밝아지고 늘 감사하며 웃으며 살 수 있습니다. 그늘진 표정으로 사는 것은 그 저변에 허물과 죄가 있습니다.
부디 목욕한 사람도 반드시 그때그때 더러워진 손과 발을 씻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서 회개를 통해 누구보다 더욱 밝고 건강하게 살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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