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우물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자칫 사람들이 잊고 넘어가거나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인물로 여기기 쉬운 이삭의 이야기입니다. 실로 이삭은 뒤늦게 서야 그의 진가를 깨닫고 마음으로부터 깊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진국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들 야곱에 비해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긴 캐릭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브라함이 히브리 민족의 원조이자 구약 최대의 족장이요 하나님 신앙의 중심기둥이었다면 야곱은 그의 굴곡 많은 인생 역정을 통해 기어이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쟁취함으로써 히브리 민족의 뼈대를 세운 존재였는데 반해 이삭의 생애에서는 그런 결정적인 역할이나 기여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렇듯 이삭은 자기 아버지와 아들의 짱짱한 명성에 눌려 단지 아브라함과 야곱의 계보를 잇는 중간 고리쯤으로 인식될 뿐 전혀 특출 난 구석이 없어 보이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이삭의 인생행로에 남겨진 신앙유산이 없었던들 오늘날 히브리 신앙의 소중한 전통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중간 고리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히브리 신앙의 대하를 이루는 인물이요 독자적이고도 굵직한 물줄기를 차지하는 위대한 믿음의 선진이었습니다.
그런 이삭에게 어느 날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재앙이 닥쳤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의 풍요를 시기하여 살던 땅에서 내어 쫓고 오래 전 부친 아브라함이 파 놓은 우물을 죄다 메워버리고 만 것입니다. 세상은 워낙 그렇습니다. 내가 잘 되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시기하여 어떻게든 망하고 못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바로 남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우물>이란 한 공동체의 생명줄과 같은 것이고, 농사짓던 땅에서 떠나라는 것은 곧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가혹한 만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결코 울분에 휩싸여 이성을 잃어버리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가 지금까지 누려온 모든 부와 안정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의지만으로 일군 풍요였다고 생각했다면 그도 당연히 무너졌을 것입니다. 허망하고 허탈하여 깊은 좌절의 수렁에 빠졌을 것이 뻔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 노력과 열매의 밑바닥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소년시절 모리아 산에서 겪은 번제 체험이 그를 늘 그렇게 일깨워 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어 쫓김과 메워짐을 당한 자리에서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악쓰지 않았고 놓치지 않으려고 온갖 추한 꼴을 보이다 결국은 이것도 저것도 다 잃어버리고 맥없이 무너지는 그런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낙망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 또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자 또 불한당들이 몰려와 그 우물을 빼앗았습니다. <죽어라 죽어라!>하는 역경이 그치지 않고 계속된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그 우물파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크게 성공했습니다.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살다보면 내가 판 우물을 남에게 빼앗기기도 하고, 하루아침에 내가 살아온 터전에서 쫓겨나는 황당한 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애써 판 우물을 누군가가 메웠다고 너무 분노하지 마십시오. 사실 우물 그 자체가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이상 우물을 파내려갈 의지와 기운을 잃었을 때 우리는 죽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를 의심치 마시고 우물 파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이삭처럼 깊고 차고 맑은 샘물을 넉넉히 허락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