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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30616m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사 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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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www.youtube.com/embed/iJQoujJx6FI" title="미디어 원본"></a></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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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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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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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30616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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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사 42: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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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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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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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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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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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파스칼은 &lt;팡세&gt;에서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갈대처럼 나약하게 흔들리지만 생각하기 때문에 고귀하다고 했습니다. 중국을 소재로 쓴 소설 &lt;대지&gt;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은 한국을 소재로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lt;살아 있는 갈대&gt;입니다. 펄벅은 우리나라를 갈대로 비유했습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지만 질긴 생명력을 가진 갈대에 우리나라를 빗대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lt;상한 갈대&gt;가 나옵니다. 성경은 우리를 상한 갈대라고 합니다. 생각하는 갈대, 살아 있는 갈대, 상한 갈대 가운데 상한 갈대가 가장 리얼합니다. 본문은 상한 갈대 외에 다른 표현이 나옵니다. &lt;꺼져 가는 심지&gt;라고 우리 인생을 얘기합니다. 등잔을 기억하시지요? 호롱불이나 남포불 말입니다. 호롱에 기름이 있을 때는 괜찮은데 기름이 마르면 그때부터는 심지가 타기 시작합니다. 그때는 얼른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바람기에도 불이 꺼집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바로 상한 갈대요 꺼져가는 등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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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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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주님은 우리가 상한 갈대 같고 꺼져 가는 등불 같다고 해서 우리를 꺾거나 끄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은 그야말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정글의 법칙이 존재하는 서바이벌 현장입니다.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심지는 누구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치유하거나 되살리기보다는 남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해 기어이 그 불씨를 꺼버립니다. 이게 세상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지라도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으십니다. 기어이 회복시켜 새 출발하게 하십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버려졌던 38년 된 환자를 기억하시지요. 그야말로 꺼져가기 직전의 가물거리는 심지였습니다. 가족도 포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를 찾아가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사람들은 다 그를 꺾인 갈대, 꺼진 심지라 생각했는데, 주님이 그를 찾아가 새 출발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상한 갈대를 꺾거나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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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4 -->
<p class="p1">아무리 상한 갈대요 꺼져가는 등불이라 해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내일이 있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이 나옵니다. 변명의 여지도 빠져나갈 구멍도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입니다. 이제 훅하면 꺼질 생명입니다. 손에 돌을 들고 꺼져 가는 등불을 끄겠다는 분노한 군중들을 물리치고 극적으로 그 여인을 구해내십니다.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부터 돌을 던져라.’ 그때 주님이 땅에 글을 쓰셨다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그 내용이 나오지 않지만, 제 생각에는 그 여인과 간음한 사람의 명단을 작성하셨을 것입니다. 극약 처방이 아니면 그 군중들이 물러났겠습니까. 어쨌든 군중들이 뒷걸음치며 달아났다고 합니다. 주님은 절대 과거로써 오늘의 우리 모습을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의 모습이 우리의 전부라고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미래의 빛 앞에서 우리를 보십니다. 가능성의 빛 앞에서 우리를 보십니다. 오늘, 어제 비록 간음한 여인일지라도 내일이면 순수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여인으로 보십니다. 우리는 과거의 이력으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스펙으로 사람을 잣대질합니다만 주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미래와 가능성, 희망의 빛 앞에서 보십니다. 그래서 상했다고 꺾거나 꺼져간다고 끄시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위기 가운데 처해 있지만 내일은 지금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대상을 앞에 놓지만, 주님은 관점이 다릅니다. 군중들은 저 여자는 간음했으니 모세의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과거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은 내일 얼마든지 새 사람이 되어 새 출발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의 전통적인 해석처럼 이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였다면, 그런 성녀(聖女)가 없습니다. 주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지척에서 주님을 모셨습니다. 주님의 시체에 바를 향유를 들고 무덤을 찾았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최초로 만난 여인, 제자들조차도 이 여인이 알려줘서 주님 부활의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항상 내일이 있고, 살아 있는 존재, 가능성 있는 존재로 대하십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은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비정합니다. 상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꺼져 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악착 같이 되살리십니다. 새 출발하게 하십니다. 부디 주님께 기대를 거십시오. 주님만이 해법입니다. 주님만이 살 길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 가운데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고, 꺼져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 상한 갈대들입니다. 이 지구는 거대한 병동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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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6 -->
<p class="p1">본문이 제시하는 처방은 단 한 가지, 여호와를 앙망하라고 합니다(4절). 마태복음 12장 21절은 하나님을 바라라고 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주님을 바라보고 그에게 도우심을 청하라는 것입니다. 절대 주님은 우리를 좌절시키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 기대에 부응하십니다. 우리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주님이 끝까지 나를 지키시고 나를 정죄하는 무리들을 물리치시고, 나를 믿어 주시며 나의 모든 가능성과 희망을 보장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을 믿지 마시고, 주님을 바라며 주님께 전적으로 기대하십시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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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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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이 찬양으로 은혜를 받으십시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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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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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 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 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 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며 늘 지켜 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보라”</p>
<!-- paragraph:p0021 -->
<p class="p2"><br></p>
<!-- paragraph:p0022 -->
<p class="p1">더욱 주님을 앙망하시고 기도하셔서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통해 모두 건강하고 새 출발하시기를 빕니다.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