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물을 채우라!

잔치가 한창인데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마침 주방쪽에서 일하던 주님의 모친 마리아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급히 주님께 알렸습니다. 주님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나이다> 조금은 모욕적으로, 또 <때>(카이로스)까지 들먹이며 사실상 거부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끝내 마리아가 물러서지 않자 결국 주님이 승복하십니다. 하인들에게 거기 놓은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안 되기는 이 말씀도 마찬가진데 마리아는 이미 예상했던지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당부까지 잊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이 가득 차자 이번에는 다시 그걸 떠다 잔칫상에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물로 된 포도주를 맛 본 하객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감탄을 금치 못하며 당장 신랑을 불러 <보통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를 내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때부터는 질이 좀 떨어지는 포도주를 내는데 이 집은 어째서 지금까지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두었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는 것입니다. 자칫 망신살이 뻗칠 뻔한 잔치가 주님의 개입으로 최고조의 즐거움 속에서 더욱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혼인잔치란 일생일대의 대사인 만큼 누구나 이웃들의 축하와 칭찬을 받으며 멋지게 치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삶에는 늘 예기치 않은 복병이 있어서 언제 어디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체면을 구기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깨닫게 되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그게 비록 우리의 상식이나 판단으로는 선뜻 납득이 안 가는 일일지라도 혼인집 하인들처럼 일단은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물을 채울 생각은 않고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불평만 합니다. 물론 아무리 믿음이 강조되는 종교적 영역이라 해도 누구에게나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사람이 이성적인 존재인 이상 신앙도 가급적이면 상식을 존중하고 무엇이든 납득할 만한 근거 위에서 믿고 따르는 것이 옳고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모든 게 반드시 납득이 되고 내 이성이 용납해야 믿겠다는 것은 분명 착각입니다. 거기에는 이미 중대한 교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때로 우리가 그것을 행한 후가 아니면 도저히 깨달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완고함 말입니다. 


주님이 <물을 채우라!> 하시면 그게 아무리 황당하다 할지라도 그대로 해 보는 것입니다. 혼자 다 아는 척하며 알량한 자기 생각이나 판단을 절대화 하지 말고 주님의 속 깊은 말씀을 실천 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 심령에 채워진 물이 우리도 미처 모르는 사이에 숙성되어 가장 향기로운 포도주로 변해 있을 것입니다. 잊지 맙시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 빈 항아리에 가득 물을 채우는 사람만이 잘 익은 포도주를 맛 볼 수 있고 흥겨운 삶의 잔치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아닌 게 아니라 요한복음은 당시 현장의 하인들만이 그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를 알았다고 전합니다(요 2:9). 


부디 주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셔서 여섯 돌 항아리 가득 물을 채우십시오. 그래서 이 무더운 여름 여러분의 삶에 늘 향기로운 포도주의 기쁨이 충만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