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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사 19: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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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span><br></p>
<!-- paragraph:p0002 -->
<p class="p1">사 19:23-25</p>
<!-- paragraph:p0003 -->
<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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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애굽과 앗수르는 원래 불구대천의 앙숙관계였습니다. 그들은 자주 서로 전쟁을 벌이며 반목하고 적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 나라 간에 대로가 생기고 서로 왕래하며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리라고 합니다. &lt;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gt;(23절). 주님은 막힌 담을 허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역사하시면 그 어떤 원수지간도 서로 화해하며 더불어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남북간 화해도 주님이 역사하시면 능히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이 막힌 담을 허시면 남북한이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는 꿈같은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주님이 &lt;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의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신&gt;(엡 2:14)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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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6 -->
<p class="p1">내 백성 애굽이여</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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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lt;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gt;(25절).</p>
<!-- paragraph:p0008 -->
<p class="p1">사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 아닌 민족이 어디 있으며 하나님이 창조하시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을 선민으로 삼으셨다는 것은 굳이 이스라엘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열방을 위해서라는 역설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무대에 올리시고 열방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주목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에 개입하시고 당신이 창조하신 민족을 어떻게 간섭하시며 이끄시는지를 계시하셨다는 점에서 그 말은 옳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애굽을 향해 &lt;내 백성&gt;이라 하셨다 하여 놀라지 마십시오. 그것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임에도 주님이 우리를 향해 &lt;내 백성&gt;이라고 부르시는 것과 꼭 같습니다. </p>
<!-- paragraph:p0009 -->
<p class="p2"><br></p>
<!-- paragraph:p0010 -->
<p class="p1">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p>
<!-- paragraph:p0011 -->
<p class="p1">&lt;…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gt;(25절).</p>
<!-- paragraph:p0012 -->
<p class="p1">맞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손으로 짓지 않으셨다면 앗수르라는 나라와 민족이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시고 당신의 뜻으로 존재하게 하신 피조물은 반드시 복 되게 하십니다. 마치 부모가 그 자식을 돌보고 사랑하듯 그렇게 지키십니다. 다만 이방인들은 너무 오래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며 하나님보다는 우상을 섬기며 살아온 나머지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많이 왜곡되고 크게 이질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교회가 세속화의 거센 물결로부터 교회 본연의 경건함과 오랜 교회의 전통들, 고유한 문화적 가치들을 잘 지켜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lt;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gt;(약 1:27). 주님이 당신을 &lt;내 백성, 내 손으로 지은 자녀, 나의 기업&gt;이라 부르시며 &lt;복이 있을지어다&gt; 하실 때 그야말로 당신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이 충만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