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30609m 스데반(행 6:8-15, 7:54-60)



20130609m

행 6:8-15, 7:54-60

스데반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오늘이 우리 교단이 지난 1992년 제77회 총회 때 매년 6월 둘째 주일로 지키기로 한 순교자 기념주일입니다. 제가 언젠가 말씀드렸듯이 제가 <스사모> 회장입니다. 스데반을 사랑하는 모임입니다. 제가 만들었고, 회원은 없고 회장뿐입니다. 아무튼 훗날 천국 가면 제일 먼저 스데반부터 만나 볼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팬들이 많습니다. 바울이나 모세, 엘리야 같은 사람은 팬들이 많은데, 스데반은 만나 볼 겁니다. 그만큼 저는 평소에 스데반을 존경합니다.


스데반은 2000년 기독교사 가운데 최초 순교자였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야고보 사도를 첫 순교자로 알고 계십니다만 스데반이 먼저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12사도 가운데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사도행전 7장에, 야고보는 12장에 나옵니다. 스데반은 어떤 사람이기에 주님이 그를 교회사의 제1호 순교자로 택하신 것일까요? 


하여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좋은 것은 다 주신 사람이 스데반입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을 보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남에게 칭찬 받는 사람’이었고, 5절을 보면 초대 7집사 중 제일 먼저 뽑힌 수석집사였습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고, 또 얼굴이 천사 같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스데반은 대단한 설교가였습니다. 7장 2절부터 53절까지가 그의 설교입니다. 산헤드린 앞에서 긴 설교를 하는데 그 내용이나 기승전결의 짜임새로 보면 거의 완벽합니다. 사도행전에는 바울과 베드로의 설교도 나오는데 제가 보기에 스데반의 설교가 가장 돋보입니다. 초대교회는 이렇게 집사부터 달랐습니다. 베드로가 한창 선풍을 일으키며 하루에 3천 명씩 회개시킬 때 스데반은 산헤드린,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국회에 잡혀가 뛰어난 명 설교를 하고 단 한 사람도 회개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래서 교회사에서 첫 순교자가 됩니다. 주님은 첫 순교자를 12사도 가운데서 뽑지 않고 7집사 가운데서 뽑았습니다. 12사도 가운데서는 첫 배교자, 첫 자살자를 냈습니다. 왜 주님은 12제자 가운데서 첫 순교자를 삼지 않고, 집사 가운데서 스데반을 순교의 제물로 삼으셨을까요?


당시로서는 스데반만큼 준비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도 그를 못 따라간 겁니다. 순교자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을 그가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을 보십시오. 본문 7장 56절 이하를 보면,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합니다. 마지막 59-60절을 보십시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최후의 기도를 스데반도 똑같이 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스데반의 순교에 누가 개입되어 있습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회심하여 개명부터 합니다. 큰 자라는 뜻의 사울에서 작은 자라는 뜻의 바울로 개명합니다. 정말 작은 자로서 겸손히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만삭 되어 나지 못한 자,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그가 끝까지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스데반을 죽인 전력 때문입니다. 바울은 평생 스데반을 죽인 아픔을 지고 살았습니다. 본문 7장 58절을 보십시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사울이 스데반 처형의 주범이었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대목입니다. 바울이 유대교 전사 시절 사람들을 선동해서 스데반을 붙잡아 그를 살해한 겁니다. 바울이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장면을 볼 때마다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기사와 표적을 행하던 사람도 돌을 던지면 맞는구나, 죽는구나 하는 것입니다. 기왕 크게 쓰실 것이라면 적어도 돌에 맞아 죽는 일은 없어야 말이 되지 않는가 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결코 불행이 아니고, 손해가 아니고, 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게 더 아름다운 것이기에 그렇게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역설이지만 사실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우리의 시련, 고난은 결국 우리에게 약과 이익과 복이 되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용납하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며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처참한 십자가를 당하게 버려둔 것은 그게 바로 수많은 영혼들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의 죽음도 무의미한 개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비로소 걸출한 바울이 나왔습니다. 그의 순교가 없었으면 바울도 없습니다. 스데반의 순교가 초대교회의 밑거름이 되고, 2000년 교회사에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죽이실 바에야 그 큰 능력을 나 같은 사람에게 주시지 왜 그렇게 하셨을까 하고 종종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큰 능력이 필요한 사람은 스데반이었습니다. 순교자가 되려면 그런 능력이 필요합니다. 권능, 성령충만, 믿음은 자기 하나 과시하라고 주신 은혜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잘 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루라고 주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순교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걸 다 자기 잘 먹고 잘 쓰는 데 사용합니다. 자기 이름을 날리는 데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순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순교자들은 인간적으로는 비참하지만, 신앙적으로는 특별히 선택된 자이기에 복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평생 순교자를 죽인 사람으로 살다가 목 베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가장 성령충만했을 때, 가장 멋진 설교를 막 끝냈을 때 하나님이 냉큼 데려가셨습니다. 바울보다 훨씬 덕 복 받은 사람이 스데반입니다. 부디 여러분의 생애도 스데반처럼 늘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시길 빕니다. 천사처럼 얼굴이 빛나고, 마지막 순간에도 하늘이 열리며 주님이 서 계신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는 복된 순교적 최후를 맞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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