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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www.youtube.com/embed/ib0xt_iI5Mk" title="미디어 원본"></a></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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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30609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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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막 6:45-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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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눈을 들어 산을 보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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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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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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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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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45절 상반절입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즉시는 언제 입니까? 본문 앞 부분을 보십시다. 41-44절입니다.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그러므로 &lt;즉시&gt;는 오병이어의 기적 후 곧바로 라는 의미입니다. 미처 그 기적과 흥분이 가시기도 전인데 제자들에게 엄청난 위기가 닥쳤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삶이라 해서 반드시 기적만, 감격만 있는 게 아닙니다. 돌아서면 당장 캄캄한 바다 한가운데서 성난 파도와 싸워야 하는 절박한 상황도 있습니다. 사실 그런 역풍에 시달리며 고통을 겪는 삶의 위기가 훨씬 더 많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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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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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럼에도 우리가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내가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 만나 모진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도 주님은 저 산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 즉시 제자들을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당신은 홀로 기도하러 산으로 가십니다. 46절입니다.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야간산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도하시기 위해서 가셨습니다. 주님은 거기서 무엇을, 누구를 위해 기도하셨을까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과 싸우고 있는 제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48절입니다.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 풍랑을 주님이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산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외로이 노 젓는 모습을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지르는 비명도 다 듣고 계십니다. 우리의 신음도 놓치지 않으십니다. 부디 내가 풍랑을 만나 허우적대며 고통을 당하는 이 순간에도 주님이 산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고, 내 사정과 형편을 다 보고 계시고, 나의 처절한 부르짖음을 다 듣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큰 위로를 받고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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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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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주님은 언제나 가장 정확한 시간에 내게로 오십니다. 48절 다시 보십시다.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제자들은 지금 만신창이입니다. 해 저물 때 항해를 시작해서 밤 사경입니다. 새벽입니다. 밤새도록 험한 바람에 시달린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현장에 안 계셨습니다. 산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그들의 고난을 함께 겪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자주 주님을 원망합니다. 왜 나를 이토록 모진 고통 속에 그냥 버려두십니까? 대체 주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나의 괴로움, 억울함, 아픔을 주님은 알기나 하십니까? 주님은 다 아십니다. 주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나의 아픔을 함께 겪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당신이 예정하신 정확한 시간에 나를 향해 오십니다. 주님이 늦지 않으십니다. 늘 우리가 조급해서 탈입니다. 주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은 다릅니다. 주님의 때가 진짜입니다. 밤 사경 즈음이 주님의 때입니다.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나사로 얘기가 나옵니다. 나사로가 죽어가자 누이들이 주님께 사람을 보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신 후에야 비로소 유대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바람에 결국 나사로가 죽고 이미 나흘이 지난 후였습니다. 마르다가 주님을 원망합니다. 목숨이 붙어 있을 때야 주님이 살릴 수 있겠으나, 이미 시체가 썩고 있는데 주님이 이제야 오시니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고 합니다. 결국 썩어 냄새나던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옵니다. 주님이 오시는 순간이 가장 정확한 때입니다. 주님의 시간에는 절대 오차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때를 존중하시고 진중하게 기다리십시오. 주님은 가장 정확한 때, 가장 이상적인 순간에 내게 이르십니다. 우리는 거기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요 믿음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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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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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밤 사경 때 제자들에게 오신 주님이 환난을 어떻게 다스리고 수습하셨습니까? 49절 이하입니다. “[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이 그림을 자세히 보십시오. 제자들은 그 풍랑 때문에 밤새도록 시달리며 죽음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풍랑을 딛고 바다 위를 걸어오셨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미친 듯이 불던 바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심히 놀랐습니다. 주님은 자연도 요리하십니다. 언제나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위협하는 환경도 순식간에 평정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을 딛고 서십니다. 그러면서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나운 바람도, 험악했던 파도도 주님 말씀 한 번이면 평정됩니다. 49절을 보니, 제자들이 처음에는 주님이 유령인 줄 알았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주님도 유령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대목을 마태복음에서 보면, 주님이 ‘너희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며 책망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믿음이 없어서 주님을 유령으로 보고 떨었는데도 주님은 그들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믿음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비명을 들으시고, 고난당함을 안타까워하시며 구원하신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도 구원해 주셨고, 믿음이 적어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구원은 백번 은혜입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구원이 먼저입니다. 기도가 아니라 은혜가 먼저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먼저 은혜로 구원해 주셨기에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믿음이 적다고 주님이 책망하시면서도 주님은 그들을 구원해 주십니다. 기도가 아니라 비명만 지르는데도 주님은 그들을 구해주셨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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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여러분, 눈을 들어 산을 보십시오. 우리의 도움이 저 산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저 높은 파도 너머에서 나를 향해 오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성난 파도를 딛고 서서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구원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주님이 내 운명의 배에 오르시기만 하면 그 시간으로 상황은 끝납니다. 험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으로 인해 여러분의 모든 고통, 아픔이 수습되기를 기원합니다.</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