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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날아가는 괘종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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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얼마 전 위를 다 잘라내고 지금도 혹독한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지방의 한 목사님이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글이 하도 맑고 고아 &lt;이분이 정말 시한부 암환자가 맞아?&gt;할 만큼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span><span>&lt;밥상 머리에 앉아 가족들에게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어느 이른 아침 잠에서 막 깨어난 여자 아이가 2층 베란다에서 힘껏 괘종시계를 내던졌어요. 왜 그랬을까?’ 그때 제 딸 아이가 ‘시간이 날아가는 걸 보려고!’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제 꿈에 방에 걸린 괘종시계가 몹시 빠르게 날아가는 걸 보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gt;</span><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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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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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4">어느새 6월입니다. 벌써 한 해의 절반이 다 가고 있습니다. 날아가는 괘종시계처럼 어쩌면 세월이 이렇게도 빠를까요? 시편 57편은 다윗의 이런 고백으로 시작됩니다. &lt;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gt; 지금 자신이 얼마나 위급한 지경에 처해 있는지를 호소하며 절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57편의 표제어를 보면 &lt;다윗이 사울을 피해 굴에 있을 때 지은 시&gt;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그때 사울에게 쫓겨 지세가 험한 유다 광야의 바위동굴 아둘람 굴에 숨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습니다. 몰락 직전의 딱한 모습으로 어두운 동굴에 은신해 있던 당시 그에게는 아마도 칠흙 같은 좌절감이 엄습해 왔을 것입니다. 시간은 사울 편으로 이제 자신은 히브리 역사의 대세에서 완전히 배제될 것 같은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혜의 은신처라고는 해도 언제 또 사울의 군대가 닥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시편 57편은 바로 그런 상황에서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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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4"><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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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4">그런데 뜻밖에도 7절 이하에서 다윗의 어조가 돌연 바뀝니다. &lt;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리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gt; 사울의 수배를 당해 도망다니는 신세인데 언제 그가 수금을 타겠으며 비파로 노래할 겨를이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그동안 아득히 잊고 지낸 수금과 노래를 뜻하지 않게 그 어두컴컴한 아둘람의 굴에서 되살려 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봐도 새벽을 깨우기는커녕 도리어 밤의 어두움에 삼키울 것 같던 그가 어디서 그런 힘과 용기가 솟아 새벽을 깨우겠다고 노래한 걸까요? </p>
<!-- paragraph:p0006 -->
<p class="p4">사무엘상 22장 2절은 당시 아둘람에 피신해 있던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이렇게 밝힙니다. &lt;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gt; 이게 바로 당시 다윗이 그냥 주저앉아 체념할 수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그는 자기를 쳐다보며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의기소침하거나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아둘람의 굴은 탄식과 좌절의 자리가 아니라 새로운 용기와 희망의 터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둘람 굴의 노래는 아프고 슬픈 심령들에게 주어진 위로와 축복의 선언이자 어두운 밤이 끝나고 마침내 새벽의 문을 여는 희망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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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4"><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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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4">저는 우리 교회가 아둘람의 굴처럼 환난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들에게 새벽을 깨우는 함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날아가는 괘종시계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노래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럴 때 이 보잘 것 없는 지하 교회도 아둘람의 굴처럼 어둡고 음습한 탄식의 동굴이 아니라 은혜와 희망의 노래가 샘솟는 축복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