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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6m 하나님은 몇 분이신가?(창 1:1-2, 요 1:1-3)



20130526m

창 1:1-2, 요 1:1-3

하나님은 몇 분이신가?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오늘이 삼위일체주일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 가운데 삼위일체 교리보다 더 난해하고 난삽한 교리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논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규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제한적이지만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초월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인간의 개념이나 때 묻은 언어나 표현에 갇히시는 분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표현이나 개념으로 묘사해서 규정한다면, 그 순간 그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이 아닙니다. 틀에 갇히면 더는 초월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유수한 전통의 삼위일체 교리도 절대 완전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진리가 아닙니다. 신비 중의 신비이고, 비밀 중의 비밀인 하나님의 신비를 어떻게 삼위일체라는 말로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요한계시록을 보면 요한이 천국에 직접 갖다 와서 묘사한 천국의 그림이 있습니다. 온통 정금이고 성곽은 벽옥이고, 그 기초석은 남보석, 녹보석, 홍보석이고, 열두 대문은 다 진주이고, 수정 같은 생명수가 흐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천국은 실제 천국이 아닙니다. 실제 천국은 그것보다 천 배 만 배 더 아름다운 곳입니다. 천국은 초월세계입니다. 천국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보기는 봤고 표현은 해야 하니까 최상급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러분, 삼위일체가 대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한 분입니까? 세 분 입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신대원에 입학하는데, 1학년 2학기에 3학점짜리 조직신학개론이란 과목이 있습니다. 신입생들에게 꼭 물어보는 게 있는데, 오늘 설교제목입니다. 하나님은 몇 분이십니까? 수년 간 확인해 봤으나 한 분이라는 대답이 99%이상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몇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질문 자체가 불경스럽다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한 분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 칭호를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숫자 1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맞지도 않습니다. 구약에는 하나님을 엘로힘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에서는 데오스라고 했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구약의 엘로힘과 신약의 데오스를 <하나님>이라 번역했습니다. 가톨릭은 <하느님>이라고 합니다. 뜻은 하늘님입니다. 동양은 천신(天神)을 최고의 신으로 섬겼습니다. 이를 수용한 가톨릭은 엘로힘과 데오스를 <하느님>으로 번역했습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하나님 칭호가 다릅니다. 한국 개신교는 하나님의 한 분임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이라고 했고, 가톨릭은 전통적 신의 칭호를 수용했습니다. 어느 칭호가 더 성서적입니까? 하나님이라는 칭호 때문에 신학생들조차도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고 있다면, 한 분이라는 뜻의 하나님과 삼위일체 교리와 어떻게 조화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히브리어 성경에는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엘로힘은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입니다. 단수형은 <엘>입니다. 그래서 정확히 번역하면, ‘태초에 하나님들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한 분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게 아니라 복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선언입니다. 이어지는 2절을 보십시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영은 무엇입니까? 당연히 성령입니다. 히브리 말로는 <루아흐>입니다. 성령도 이미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역에 동참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번에는 요한복음 1장 1절 이하로 갑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데오스>이고 말씀은 <로고스>입니다.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과 성령이 구약에 등장했고, 요한복음 1장 1절 이하를 보니, 성부와 성령뿐만 아니라 그 창조사역에 말씀도 함께 했다고 합니다. 모든 창조 행위에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라고 하면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엘>이 아니라 <엘로힘>이 맞습니다. 신구약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하나님이 세 분이십니다. 창세기 1장 2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숙고하신 대목입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만들자고 합니다. 내가 아니라 우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도 세 분 하나님이 잘 협의하셔서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신관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일신론이 아닙니다. 일신론은 야웨를 믿는 유대교, 알라를 믿는 이슬람이 일신론, 즉 단일신론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삼신론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이면 삼신론 아닙니까? 삼신론은 기독교의 신관이 아니라 동양의 신관입니다. 유교를 보십시오. 유교는 삼재입니다. 천, 지, 인입니다. 불교도 마찬가집니다. 삼보입니다. 불보, 법보, 승보입니다. 단군신앙도 마찬가집니다. 환인, 환웅, 환검입니다. 하다 못해 삼신상제(할매)도 태신, 삼신, 육신입니다. 기독교는 성부, 성자, 성령인데 왜 삼신론이 아닙니까? 세 분이면서 동시에 한 분이고, 한 분이면서 동시에 세 분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 분이라는 단일신론도 아니고, 세 신도 아닙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입니다. 몸은 하나고 머리가 세 개라는 뜻도 아닙니다. 세 분이면서 동시에 한 분이고, 한 분이면서 동시에 세 분인 신입니다. 숫적으로 3입니다. 삼위라는 뜻은 세 분이 자기의 자리, 위상이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분명 숫적으로 3인데, 본질적으로는 1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 이하입니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근본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완벽한 셋입니다. 이게 삼위일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한 분이라고 해서도 안 되고, 세 분이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성서의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해야 정답입니다. 세 분인데 자기의 위상과 고유한 사역이 있습니다. 성부는 창조, 성자는 구속, 성령은 보혜사로 각자의 위상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본질상으로는 이 셋이 완벽히 하나입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아주 흔한 오해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아주 대표적인 게 양태론입니다. 원래는 한 분이신데 구속사적 시대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때는 성부, 신약시대 때는 성자, 현재는 성령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데, 삼위일체는 양태론이 아닙니다. 세 분이 자기의 확실한 자리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3장 21절 이하입니다.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같은 시간과 장소에 성부, 성자, 성령이 동시에 출현했습니다. 양태론을 부정하는 말씀입니다. 


또 어떤 분은 나무와 강을 예로 삼위일체로 설명합니다. 뿌리, 줄기, 가지 또는 상류, 중류, 하류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1/3 하나님 밖에 안 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독자적으로 완전한 하나님입니다. 이미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완전하고도 완벽한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유와 설명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소위 군주신론이란 게 있습니다. 이것은 성부, 성자, 성령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 권위와 신성에 있어서는 서열과 등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을 위계질서로 보는 겁니다. 성부 하나님이 제일 높고, 그 다음이 성자이고, 성령은 가장 아래라는 겁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수평적입니다. 암암리에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을 가장 높으신 분으로, 성령 하나님을 우리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하나님쯤으로 생각합니다. 세 분 하나님이 대등합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냥 믿으면 되지 그게 왜 그리 중요하냐고 합니다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믿느냐는 우리 신앙의 질을 결정합니다. 다른 종교는 그 기도 대상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처럼 이렇게 깊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천지신명께 비는 것은 천지에 있는 모든 신들을 가리킵니다. 신앙 대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소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목욕재계하고 정화수 떠 놓고 천지신명께 비는 겁니다. 대상이 확실하지 않고, 천지에 신이 있다면 내 소원 들어달라고 하는 겁니다. 내 치성만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믿음의 대상을 바로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분이 우리에 대한 바람이 무엇인지, 우리가 그분을 어떻게 기도하고 경배하기를 원하는지를 잘 살펴서 합당하게 믿고 기도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입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확신을 통해 여러분의 신앙이 더욱 건강하고 깊어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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