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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근심과 슬픔의 날(사 17: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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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근심과 슬픔의 날</p>
<!-- paragraph:p0002 -->
<p class="p1">사 17:7-11</p>
<!-- paragraph:p0003 -->
<p class="p2"><br></p>
<!-- paragraph:p0004 -->
<p class="p1">&lt;네가 심는 날에 울타리를 두르고 아침에 네 씨가 잘 발육하도록 하였으나 그님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gt;(11절).</p>
<!-- paragraph:p0005 -->
<p class="p1">수확의 때는 당연히 기뻐하고 즐거운 날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도리어 슬픔과 고통의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수확량이 기대치에 못 미친다거나 누가 곡식을 몽땅 베어갔다거나 무자비한 적군들이 다 탈취해 간 경우라면 오히려 그 날이 큰 고통과 슬픔의 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의 보화를 이 땅 말고 저 하늘에 쌓아두어야 합니다. 이 땅에 쌓아둔 보화는 언제든 약탈당할 수 있지만 하늘에 쌓아둔 보화는 누구도 결코 빼앗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p>
<!--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아세라와 태양상</p>
<!-- paragraph:p0008 -->
<p class="p1">&lt;자기 손으로 만든 제단을 바라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gt;(8절).</p>
<!-- paragraph:p0009 -->
<p class="p1">추수 날 슬퍼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자기의 손으로 만든 우상의 제단을 허물어야 하고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lt;아세라와 태양상&gt; 같은 우상을 부숴버려야 합니다. 아세라와 태양상은 이스라엘의 가장 오래된 우상들이고 또 가장 유력한 우상들이었습니다(신 4:19, 욥 31:26). 당신의 우상, 당신이 만든 우상의 제단은 무엇입니까? 누구에게나 그 사람만의 은밀한, 비밀한 우상이 있고 또 제단이 있습니다. 올해도 당신이 풍성한 수확과 기쁨의 추수를 기대한다면 단호히 그 모든 나만의 제단, 나만의 비밀스런 우상을 다 소탕해야 합니다. 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나 명예나 외모나 이성이든 내 안의 우상을 모조리 타파해야만 비로소 추수의 때가 슬픔의 날이 아닌 기쁨과 보람의 날이 될 것입니다. </p>
<!-- paragraph:p0010 -->
<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이방의 나뭇가지</p>
<!-- paragraph:p0012 -->
<p class="p1">&lt;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나무를 심으며 이방의 나뭇가지도 이종하는도다&gt;(10절).</p>
<!-- paragraph:p0013 -->
<p class="p1">그 땅에 자생하는 나무들로 만족하지 못하고 여러 이웃나라에 사람들을 보내 진귀한 묘목들을 비싼 값에 사들이고 그것으로 접붙임을 하는 등 온갖 고상한 취미와 사치로 온실을 지어 오직 그들만이 이국적인 꽃과 식물을 즐겼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연을 가꾸고 화원을 꾸미는 일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지나치게 그 일에 탐닉하여 도를 넘는 일은 분명 어리석습니다. 더구나 가난한 사람들이 여전한 사회에서 소수의 부자나 권력가들만이 사치한 문화를 즐기며 고상한 취미생활로 위화감을 조장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것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곧 더불어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현대사회는 삶을 즐길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다 구비했습니다. 그럼에도 도통 감격과 환희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lt;더불어의 삶&gt;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소유한 풍요 속에서 삶을 즐기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원성이 너무 큽니다. 그들의 불행이 나의 삶을 침범해서 길게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잘 사는 것은 반드시 더불어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더불어 살고자 하는 개인과 사회를 축복하시고 격려하십니다. 나 홀로 부와 특권을 즐기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은 심판 받습니다.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