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생명 언어

오늘의 현실 속에서 돌이켜 보면 오순절 성령강림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이 땅에 <새로운 인간 모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사회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예수운동이 졸지에 지도자를 잃고 표류하게 될 위기에 봉착했을 때, 이제 그 운동이 유대교와 로마제국의 탄압으로 최소한의 명맥마저도 이어갈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당신의 영으로 가득한 120명의 새 사람들을 풀어 세상을 향해 생명을 외치게 하신 사건 아닙니까. 인류 역사를 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영을 받은 새로운 인간의 출현뿐이라는 게 바로 성령강림절 현장에서 선포된 메시지의 요체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전하는 사도행전 2장의 기사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당시 성령강림을 체험한 제자들에게 나타난 <방언>이란 현상입니다. 물론 그 때의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어떤 신령한 소리가 아니라 <각 나라의 말>이었습니다. 방언 중에는 바울이 언급한(고전 14장) 영적 언어의 영역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 때 나타난 방언은 분명 일상적인 외국어 방언이었습니다. 이는 곧 자신의 언어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상대의 자리에 서서 그 뜻을 통하고자 한 소통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준 것입니다. 당시 그 현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이 있었고 그들 모두가 성령에 취한 갈릴리 사람들의 방언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성령의 외국어 능력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 세계와 논리만을 도도히 고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언어를 준중하며 <너>의 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공유하려는 자세를 그들이 선교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것이야말로 이 땅에서 이뤄지는 의사소통의 가장 아름다운 모범이라는 것입니다. 강한 자가 자신의 언어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며 약한 자들의 목소리를 억압한다면 그 사회에서의 정의와 평화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약자들을 철저하게 압살하여 누구도 감히 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했습니다. 따라서 이 성령강림의 방언사건은 그런 <일방적인 언어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선전포고였습니다. <하나님의 영> 안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평등하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과 그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는 힘은 바로 처지와 입장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피차의 언어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느 시대나 자신의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약자들의 <방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힘없는 자들의 진정한 대변인이 될 때 비로소 세상에는 살아갈만한 희망이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초대 예수 공동체의 방언이 증거한 중심 메시지는 <주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즉 생명에 대한 증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강림절의 방언은 곧 <생명의 언어>입니다. 폭력과 살인, 미움과 증오, 오염과 파괴로 망해가는 이 세계와 인간정신을 정화하고 사랑과 평화, 화해와 소통의 언어를 부활시켜 이 세상을 구원하자는 것이 바로 방언의 근본 목적입니다. 성경은 고대문명이 가장 고도하고 화려했던 바벨론이 패망한 이유를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혼돈케 하사 하늘에 닿게 하겠다며 쌓던 바벨탑이 중단되고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서로간의 언어의 불통이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렸다는 것입니다. 언어란 결코 단순한 기호가 아닙니다. 이해의 전달입니다. 따라서 언어의 단절이나 불통은 곧 이해의 단절을 뜻합니다. 그러기에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그 언어가 달라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인류가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며 더불어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생명과 창조의 기쁨을 누리며 상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부디 성령 충만하셔서 생명 언어인 방언으로 소통하시며 온갖 파괴적인 언어 공해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세상을 구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