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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7일 주일오후예배</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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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본문: 시 22:1-21</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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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제목: 예언과 성취</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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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아얠렛샤할(사슴이란 곡조)에 맞춘 노래]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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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는 메시아와 관련된 예언이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게 이사야 53장, 미가서 5장, 그리고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인 시편 22편 입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의 어느 메시아 예언보다 치밀하고 생생합니다. 시편은 다윗이 기록하였는데 실제 주님 십자가 사건보다 1,000년이 앞섭니다. 그런데 이토록 생생할 수가 없습니다. 문자적으로도 일치합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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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1절 상반절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도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정말 주님이 문자 그대로 읊으신 것 같습니다. 6절 이하입니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백성들이 실제 이렇게 했습니다. 백성들이 시편 22편을 놓고 각본대로 움직인 것은 아닌데 문자적으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39절이하입니다. “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정확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이방인들은 다 개입니다. 로마 군인이 주님을 창으로 찌른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8절도 그렇습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로마 군인들이 주님의 옷을 두고 제비 뽑았습니다. 이 얼마나 생생합니까?</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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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고난에 대한 성경의 구체적인 예언과 생생한 성취는 무엇을 뜻할까요? 십자가 사건이 절대 우연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예언된 사건의 성취입니다. 주님의 용의주도한 경륜에 의한 사건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보면 그렇게 표현합니다. ‘이는 성경에 저희가 옷을 나누고 제비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고 합니다. 주님의 일거수일투족은 다 하나님의 계획과 예정과 인간 구속의 각본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어떻게 결단하고 응답해야 합니까? 우리의 몫이 무엇입니까?</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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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2편 22절 이하를 보면 주의 이름을 형제들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22절입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순종해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이름을 널리 선포하는 일이 이 시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각본에 순종하신 주님의 이름을 형제와 이웃에게 널리 전하는 게 우리의 도리입니다. 아! 대단하다고 감격하고 감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널리 전하고 선포하는 게 옳습니다. 그래서 우리뿐 아니라 우리의 형제들도 주님이 주시는 십자가의 공로로 다 구원 얻도록 전도하고 선교하는 게 이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마땅한 사명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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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찬송하며 주께 영광을 돌려야 옳습니다. 23절입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경외는 예배와 경배를 뜻합니다.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고, 예배드리는 것이 또한 우리의 몫입니다. 하나님이 정교하고 정밀한 각본을 짜시고, 주님이 그 하나님의 계획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철저히 순종하시고 당신의 목숨까지 바쳤음을 아멘하고 받아들인다면, 이제 우리는 날마다 주께 찬송하며 주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게 맞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주님의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찬송하고 영광돌리고 예배하며 살아야 합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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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서원을 갚아야 합니다.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라고 합니다. 25절 하반절입니다.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당신의 계획, 약속, 뜻을 충실하게 성취하셨습니다. 1000년 전의 약속도 그야말로 칼처럼 지키시며 문자적으로 그 약속을 다 이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신구약의 모든 약속을 그렇게 이행하십니다. 신구약할 때 약 자는 약속 약 자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급할 때는 약속을 남발합니다. 그 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고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인했다면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라는 겁니다. 신용불량자가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고 완전하신만큼 우리에 대해서도 그렇게 기대하십니다. 우리처럼 약속에 무책임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우리가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설마 예수는 믿어도 사는 건 내 뜻대로 살겠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약속에서 너무도 무책임합니다. 천 년 전에 성령에 감동된 다윗의 입을 빌어 예언하신 말씀, 그걸 문자적으로 철저히 이해하신 하나님의 경륜 앞에서 다시 한 번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의 다짐과 서원을 이행하십시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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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세 가지를 부탁하십니다. 주의 이름을 선포하며 살라. 늘 찬송과 영광과 예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 서원을 갚아라.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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