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19n 세 청년의 신앙(단 3:13-23) 청년부 헌신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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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9n 청년부 헌신예배
단 3:13-23
세 청년의 신앙
[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우리가 잘 아는 본문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다니엘의 친구들입니다. 다니엘과 함께 바벨론에 붙잡혀 간 볼모로서 유다의 영재들입니다. 볼로로 잡아간 유다 영재들은 그들의 이름을 바꾸고 바벨론 문화에 동화되도록 세뇌 정책을 폈습니다. 그때 영재들의 나이가 16세 정도 됩니다. 많은 영재들이 다들 바벨론 문화에 넘어갔으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켰습니다. 다니엘에게 하나님은 남다른 해몽의 지혜를 주셔서 느부갓네살 왕의 난해한 꿈을 풀자, 왕이 감격하여 다니엘에게 상을 내립니다. 또한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에게 높은 관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시련이 닥칩니다. 왕의 신상을 세우고 모든 사람이 그 신상에 절하라는 겁니다. 만일 절하지 않는 자는 즉시 잡아다가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지겠다는 경고까지 내립니다. 결국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이 만들어 세운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왕 앞에 끌려 나옵니다. 왕은 진노하였으나 내심 그들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다시 한 번 그들에게 기회를 줍니다(15절). 왕의 최후 선처마저도 그들은 단호히 거부합니다. 어떻게 십대 아이들이 죽이겠다는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타협을 모르는 믿음이었습니다. 14-15절을 보면, 왕이 그들을 신문합니다. 왕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의 변명을 듣고자 합니다. 영재들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신상에 절하면, 절대 풀무불에 던져지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16절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당돌한 대답입니다. 말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에 타 죽을지언정 절대 우리는 신상 앞에 절하지 않습니다고 못을 박습니다. 타협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타협을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날마다 식탁에 오르던 각종 진미, 특히 육류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채식만 하겠다고 합니다. 그들 식탁에 오르는 산해진미가 우상 앞에 차려졌던 젯밥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하나님이냐 우상이냐, 신앙이냐 타협이냐는 기로에서 언제나 단호했고 철저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비극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양보할 것은 양보하지 않고 절대 양보하면 안 될 것은 허무하게 양보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세상 문화와 타협하며 삽니까? 세상에 발을 딛고 살지만, 세상 문화에 동화하며 살아서는 안 되는 게 성도의 삶이라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세상과의 타협을 밥 먹듯 합니다. 그러나 이 십대의 어린 소년들을 보십시오. 죽음 앞에서 우리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라면 길게 말씀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길 바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을 확신했습니다. 15절 하반절을 보시면, 느부갓네살 왕이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아무리 위대하다 한들 저 풀무불에서 너희를 구원해내겠느냐며 비웃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년들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17절입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느부갓네살은 어떤 신도 너희를 저 풀무불에서 구원해 낼 수 없다고 하는데도, 이 소년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구해내실 것이라고 합니다. 어린 소년들이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 못 말리는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누가 굴복시키겠습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만이 아닙니다. 다니엘 6장에 가면 다니엘이 굶주린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바벨론 총리가 되어 왕의 총애를 받았는데, 결국은 다른 관료들이 그를 시기해 사자굴에 던집니다. 절대 다른 신에게 기도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왕의 조서에 굴하지 않고 다니엘은 날마다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창을 열고 기도했고, 그래서 극형에 처해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사자들의 입을 봉하십니다. 다니엘에겐 그런 확신이 있었습니다. 사자굴에 던져져서도 기도한 겁니다. 그의 믿음대로 사자굴에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나옵니다. 극렬한 풀무불에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구해내신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다니엘을 굶주린 사자굴에서 안전하게 구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위기로 말하면 그보다 더 절박한 상황은 다시 없습니다. 혹 지금 혹독한 시련을 겪고 계십니까? 사자굴에 던져진 것과 같은 모진 시험 중에 계십니까? 이 소년들처럼,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권능을 확신하십시오.
신앙의 백미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 소년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절대적으로 신뢰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이토록 신뢰하는데, 혹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판단이나 생각과는 달라서 우리를 구해 주지 않을 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을뿐더러 왕이 세운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우리의 기대와 바람과는 달리 하나님이 우리를 풀무불 가운데서 구해 주시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우리의 신앙의 정절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그랬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가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서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겠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가 오든 하나님의 경륜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궁극적으로 그것이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복이 된다는 확신입니다. 이런 신앙은 말리지 못합니다. 아무리 살고 싶고,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기꺼이 저 풀무불 속으로 뛰어들겠다는 것입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쓴 잔을 지나가게 하십시오. 그러나 내 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십자가를 지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피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인 줄 뻔히 알면서도 내게 희생이 따른다는 것 때문에 무참히 하나님의 뜻을 저버립니다. 그러나 이 소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신앙을 표명한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진노하여 풀무불을 평소보다 칠 배가 더 뜨겁게 했습니다. 오죽하면 그 집행관이 타 죽었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 세 소년은 타지 않습니다. 세 사람을 풀무불에 넣었는데, 그 속에 네 사람이 보입니다. 그 한 사람이 바로 신의 아들, 주님입니다. 이것을 느부갓네살 왕이 시인합니다. 24절 이하를 보십시오.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주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그 풀무불 속에서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털끝 하나도 상하지 않고 그 풀무불에서 되살아 나왔습니다. 다니엘을 구해 주실 때도 천사를 보내사 굶주린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습니다.
결론입니다. 3장 30절을 보십시오.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이 얼마나 멋진 승리입니까? 바벨론이 어린 세 소년의 믿음 앞에서 굴복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들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청년 여러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위대한 신앙을 본받고 계승합시다. 그래서 바벨론과 같은 세상, 바벨론과 같은 이 시대를 보란 듯이 믿음으로 이기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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