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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둘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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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처음 아버지께 자기 몫의 유산을 요구할 때만 해도 그는 야망에 빛났고 뭣이든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은 자신감에 넘쳤으며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모험심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산을 신속히 처분하여 서둘러 먼 나라로 떠난 것만 봐도 그가 그동안 얼마나 아버지의 고리터분 한 속박과 형의 달갑지 않은 간섭으로부터 자유하기를 갈망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는 아마도 이대로 살다가는 평생 &lt;첫째&gt;가 아닌 &lt;둘째&gt;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나름의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는 이제 아버지로부터 제 몫을 챙겨 독립하므로써 높이 비상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았고, 꿈에 부푼 새출발을 감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세상으로 나가 부딪쳐 본 현실은 결코 녹록치가 않았습니다. 아무런 물정도 모르는 풋내기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하루하루였습니다. 결국 그는 가지고 간 돈을 다 탕진하고 급기야는 제 몸뚱아리 하나도 의지할 곳이 없는 최악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거기서도 더 몰려 돼지 먹이인 쥐엄 열매마저도 얻지 못해 배를 곯았으니 그 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돼지우리에서 자고 종일 들판을 헤매며 돼지를 쳐도 쓰디쓴 쥐엄 열매조차 배불리 먹을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 있음을 </span><span>    </span><span>그 때 그는 처절하게 체험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그의 인생은 애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점점 더 바닥으로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더는 잃을 것이 없게 된 그 맨 밑창에서 마침내 &lt;출구&gt;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금이라도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lt;아버지께 깊이 고개 숙여 사죄를 빌고 이제부터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많은 품꾼 중 하나로 받아 달라고 사정하리라! 거저가 아니라 열심히 일한 대가로 밥을 먹여 달라는 것이니 아버지도 그 정도는 용서하시겠지...&gt; 이게 바로 재산을 나눠 달라고 요구할 때의 당당함과는 달리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을 &lt;품꾼&gt;수준으로 하향 조정한 둘째 아들의 딱한 모습입니다.</span><span> </span><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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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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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이는 극단한 자기 비하일 뿐 아니라 아들의 존엄과 지위를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쥐엄 열매 인생에서 품꾼 인생이라도 지키려는 굴욕적인 선택이자 품꾼의 양식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래서 쥐엄 열매 인생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부끄러움도 견디리라는 둘째 아들의 안타까운 체념입니다. 그의 패기와 꿈이 기껏 이렇게 &lt;품꾼의 양식&gt;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그동안 &lt;품꾼&gt;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는가 하는 비굴한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역사의식의 빈곤이라든가 정신적 미성숙, 수준이하의 도덕성, 권위주의의 득세 등이 다 쥐엄 열매 인생에서 품꾼 인생을 목표로 줄달음쳐 온 그간의 삶과 역사의 필연적인 귀결이었음을 누가 감히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피할 수 없는 절박함도 있었고, 또 그 과정에서 쏟았던 땀과 노고와 희생도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경제발전은 좀 이루었고 살만하기는 했어도 내면세계는 더 메말랐고 심령은 더 황폐화되었으며 영성은 더 고갈되었다는 사실도 정직하게 직시해야 옳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가 품꾼 인생에 멈추거나 그것을 족하게 여기는 인생이 되기를 원치는 않으십니다. 보십시오. 둘째 아들이 거지행색으로 돌아왔을 때도 아버지는 권위와 체면 따위를 생각지 않고 맨발로 뛰어가 포옹하고 입을 맞추며 좋은 옷, 반지, 신발을 신겨 아들의 명예와 지위를 온전히 회복시켜 주었으며 기쁨에 넘쳐 송아지까지 잡아 큰 잔치를 베풀어 주지 않았습니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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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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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이렇듯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모든 걸 내줘도 아깝지 않은 아들로 생각하시는데 정작 우리는 왜 자꾸만 스스로를 품꾼 정도로 평가절하 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양식은 엄연히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아니고 품꾼들이 먹는 양식도 아닌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깨달음이며 사랑으로 감동 받은 보다 원대한 꿈입니다. 깊이 있는 사상이요 아름다운 마음이요 근원을 어루만지는 예술이며 품위 있는 인격입니다. 가볍고 말초적인데다 지나치게 선정적인 문명의 풍토 속에서도 하늘 양식을 구하며 아들의 품격을 포기하지 않는 그 고고한 자존심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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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2">부디 품꾼이 아닌 아들로 사십시오.</p>
